2007년 4월 16일 월요일

현기네 집 거실은 동네 꼬마들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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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네 집 거실은 동네 꼬마들 도서관

거실, 동네 꼬마들에 개방… “친구 많이 생겼어요”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송전리. 주소는 ‘시(市)’지만 동네 도서관 하나 없던 이곳에 1년 전 어린이 책만 1200권 장서를 갖춘 ‘작은 도서관’이 들어섰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곳이 아니다. 지난해 4월 이사온 신순성(여·38·보험설계사)씨의 32평 다세대주택이다. 방과후와 주말이면 신씨 집 거실엔 동네 아이들 10여 명이 찾아와 제멋대로 주저앉아 책을 읽는다.

“도서관이 없어서 동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집을 개방하기로 했죠. 두 아들이 또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신 씨 집 거실 양쪽 벽은 책장으로 가득하다. 이사할 때 TV와 소파를 처분하고 거실을 서재로 꾸몄다. ‘거실 서재’에는 고고학을 전공한 남편 장원섭(49·대학강사)씨의 전공서적을 포함해 역사, 예술 서적 2000권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아이들 손이 닿는 책장 아래쪽 4칸은 어린이 책을 넣고 그 위쪽은 장씨의 책을 꽂았다. 현기(9)·준기(6) 두 아들 교육을 위해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사온 후 동네 아이들이 찾아오면서 신씨가 1년 동안 인터넷 서점을 통해 주문한 어린이 책이 600권이 넘는다. 아이들 책이 늘어나자 남편 장씨는 전공서적 300여 권을 정리해야 했다.

▲용인시 신순성씨의 32평 다세대주택‘거실서재’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종이접기를 하며 때론 뒹굴기도 한다. /허영한기자 younghan@chosun.com

지 난 주말엔 가장 어린 여섯 살 아들 준기부터 이웃집 아이 열두 살 진석이까지 아이들 열한 명이 신씨 집 거실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희은(여·10)이는 “아무 때나 오면 책을 읽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지영(여·10)이는 “친구들이랑 놀 수도 있고, 전래동화 읽는 것도 신난다”고 자랑했다. 일요일에도 엄마 아빠가 일을 해야 한다는 열한 살·아홉 살 형제는 “주말이면 옆 동네에서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여기에 와서 책을 본다”고도 했다.

남편 장씨는 처음엔 아이들로 북적대는 집안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달라지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바꿨다. “제가 시끄러운 걸 싫어했어요. 그런데 동네 아이들과 함께 밝게 자라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교육환경이 이렇게 중요하구나’라고 깨달았죠. 지금은 아내를 존경합니다.”

이웃들도 대환영이다. 아이들끼리 친해지니까 이웃간 관계도 좋아졌다. 처음엔 냉담했던 엄마들도 없지 않았지만 요즘은 동네에서 신씨를 만나면 이웃 엄마들이 먼저 달려와 반갑게 인사한다. “아이들이 저희 집에 놀러 간다고 하면 엄마들이 안심하는 것 같아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게임에 빠질 염려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이가 책을 읽는 습관이 붙었다고 고마워하는 엄마들도 많아요.” 신씨가 없을 땐 이웃 엄마들이 아이들 밥을 챙겨주기도 한다.

신씨는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내 아이를 가장 잘 키우는 방법이기도 하거든요. 아이들은 또래들에게서 더 많이 배우잖아요. 서로 오빠·형·동생 하면서 서로 배려하는 요령이나 처세법을 배워요.” 신씨는 “아이들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로서가 아니라 친근한 장난감으로 여기기를 바랐다”면서 “책 읽는 환경만 만들어 놓으면 아이들은 간섭하지 않아도 저절로 책을 읽게 된다”고 말했다.

▲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송전리 신순성씨의 32평 빌라 거실. 일요일인 2007년 3월 11일 오후, 온 집안이 서재인 이곳에서 동네 아이들은 책도 읽고 종이접기도 하고 직접 종이에 그린 보드게임도 하고 뒹굴며 논다. / 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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