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5일 화요일

[이제 다시 아버지다]<상>힘내라! 울 아빠

[이제 다시 아버지다]<상>힘내라! 울 아빠

[동아일보 2007-06-01 03:19]


[동아일보]

《“마시는 술잔의 절반이 눈물과 한숨이다”라는 아버지들의 하소연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지금이야말로 ‘아버지’의 이름을 가족 모두가 다시 불러줄 때가 아닐까. 우리 모두 ‘아빠 힘내세요!’를 외쳐 보자. 말 한마디가 아빠의 어깨를 가볍게 해 줄 것이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친구들 야유회 모임에 참석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던 주부 정모(50·서울 동작구 대방동) 씨. 모처럼 남편과의 오붓한 외출에 한껏 들떠 있던 정 씨는 현관문 앞에서 주섬주섬 두꺼운 등산화를 꺼내 신는 남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번듯한 야외용 운동화는커녕 그나마 하나 있는 등산화도 낡고 볼품이 없었던 것. 하지만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발을 신고 묵묵히 채비를 마쳤다.

“등산화 하나 변변찮은 게 문제가 아니라 문득 남편 인생 자체가 낡은 신발처럼 보여 서글퍼졌어요. 이제 은퇴가 코앞인데 저 사람이 과연 무엇을 하며 남은 인생을 보낼 수 있을까 싶더군요. 노는 것도 놀던 사람이 논다고, 평생 여가라는 것을 즐겨 보지도, 즐길 여유도 없었던 저 사람에게 시간이 주어진들 제대로 즐길 수나 있을까 싶어요.”

정 씨는 그날 남편의 뒷모습에서 평생 자신의 행복을 담보로 가족의 행복을 지켜 온, 듬직하지만 우울한 그늘을 보았다고 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우울하다.

집안의 권위로 상징되던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위축되고 고립된 모습으로 서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버지들은 불혹이 아니라 ‘부록’ 같은 인생으로 전락했다고 토로하기도 하고 가정에서는 가족 아닌 가족 신세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영업을 하는 김모(52·서울 도봉구 쌍문동) 씨.

그는 요즘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면 서글픈 상실감이 들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도 이런 게 갱년기 증상인가 싶었지만 그는 그것이 가족과의 단절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사람은 안방에서 TV를 보거나, 전화를 하거나, 혹은 거실 소파에서 TV를 봅니다. 애들은 밤 12시가 다 돼야 오니 볼 시간도 없지만 또 간혹 눈이 마주쳐도 대화가 두 마디 이상 지속되지 못해요. 날 따듯하게 반기는 건 강아지들뿐입니다.”

김 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마치 나만 집 속의 또 다른 집에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직장이 불안해진 것은 우리 시대 아버지를 더욱 주눅 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애들 공부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는 한 40대 가장은 이렇게 넋두리한다.

“사교육비로 허리가 휘고 정년 보장도 없고…. 삶의 희망이 없어요. 오죽하면 요즘은 3D에 ‘꿈이 없는’이란 뜻의 ‘드림리스(dreamless)’를 하나 더 추가한 ‘4D’란 말이 나왔겠어요. 정년 보장해 주고 사교육비 잡는다는 사람 있으면 대통령으로 뽑아 줄 겁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바깥 자리가 불안해지면서 아버지는 더 바깥일에 다걸기해야 하는 상황이고 반면 가정에서는 경제권과 교육권이 아내한테 넘어가면서 아버지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40, 50대 가장이라면 아버지 자리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소장은 “아버지의 위기는 아버지 혼자 해결할 수 없으며 가족 모두가 나서서 도울 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의 위기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곧 가정의 위기, 사회의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경제적 책무를 나누어 지려는 가족의 노력과 심리적인 아버지 자리의 ‘틈’을 만들어 주려는 가족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Previous Post
Next Post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