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1일 토요일

‘新가정’ 남편역할이 바뀐다



“빨 래 이렇게 개면 주름잡혀서 안된다고 했잖아. 그리고 행주는 왜 이렇게 더러워. 역시 너한테 맡기면 같은 일 두번 해야 한다니깐.” 우리가 흔히 듣는 아줌마의 ‘바가지’가 아니다. 주말 아침 부인을 향한 젊은 아저씨들의 ‘바가지’다. 부부의 전통적인 역할 모델이 바뀌고 있다. 특히 젊은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 ‘집안일은 부인이 담당하고 남편은 도와준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가부장적 질서의 약화로 인한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 집안일 더 잘하는 남편 = 남은선(여·28·은행원)씨는 항상 남편에게 혼난다. 꼼꼼한 성격이라 집안일도 곧잘 하지만 남편 안정환(28·회사원)씨의 성엔 차지 않는다. 실제로 남편이 빨래를 개거나 부엌 정리를 하면 훨씬 더 깔끔하게 느껴진다. 결혼 1년차인 남씨 부부는 종종 ‘너무 깔끔한 남편’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남씨는 “행주가 더럽다고, 빨래에 주름잡힌다고 뭐라고 하는 건 너무 하지 않느냐”며 푸념한다. 남씨는 “주변의 친구 중에 깔끔떠는 남편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남씨의 친구 김모(여·28)씨도 “내가 다림질하고 있으면 너무 못한다고 다리미를 가져가 직접 다린다”며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하니 몸은 편해서 좋지만 가끔은 남편의 잔소리에 울컥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 요리하는 남편 = 젊은 부부들은 흔히 ‘요리는 부인이 하고 설거지는 남편이 한다’는 원칙으로 유지해왔으나 최근엔 이마저도 무너지고 있다. 결혼 3년차 조성모(31)씨 부부는 남편이 요리를 한다. 어지간한 중식·양식 요리까지 만들 줄 아는 조씨는 “부인에게 맛있는 음식 해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함께 밥을 먹고난 뒤엔 설거지는 부부가 함께 한다. 조씨는 “함께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하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며 함께 설거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웃에 사는 결혼 3년차 김모(34)씨 부부의 경우는 2년전 부인 황모(여·32)씨가 직장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후 1주일씩 교대로 저녁식사 당번을 하고 있다. 김씨는 “이젠 회사에서도 밥하러 가야한다고 나서면 보내준다”며 “둘다 직장생활 하면 집안일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인데 당번을 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 가계부 쓰는 남편 = 이모(여·31)씨는 2년째 남편 최모(32)씨에게 생활비를 타서 쓴다. 최씨는 매일 가계부를 쓴다. 이씨는 매일 아침 필요한 만큼의 생활비를 타서 쓰고 지출내역을 정리해서 남편에게 알려야 한다. 결혼 초기엔 이씨가 생활비를 관리했지만 두달만에 최씨에게 경제권을 넘겨줬다. 최씨는 “조금 야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부인보다 내가 훨씬 더 꼼꼼하고 알뜰해서 가계부를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도 “가끔 몇백원 단위까지 허락을 받아 돈을 타 쓰는 게 짜증나기도 하지만 확실히 돈은 더 잘 모이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 애교 떠는 남편 = 친구들에게 ‘닭살부부’로 알려진 김모(30)씨 부부. 결혼한 지 4년이 됐지만 남편 김씨는 아직도 부인에게 애교스러운 애정표현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매일 10통 이상 보낸다. 친구들과 모임을 할 때도 김씨는 부인의 손을 놓지 않는다. 얼마전엔 지하철역에서 걸어 올라오는 부인에게 달려가 꽉 안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했다는 김씨는 “연애할 때부터 내가 더 많이 애정표현을 했다”며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이같은 부부역할 모델의 변화에 대해 “사회내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변화가 오면서 남자는 돈 벌어오고 여자는 살림하고 애 낳는다는 전통적 관념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더이상 정형화된 부부모델은 존재하지 않고 부부의 모습이 다양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김경희 교수도 “저출산으로 딸만 키우는 가정도 늘고 여성들도 같이 돈버는 세상이 됐는데 과거처럼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않는 남자는 결혼시장에서 선택되지 않을 것”이라며 “아직 변하지 않은 남성들도 이런 변화를 수용해야만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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