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4일 토요일

"당신같은 한국인 냄새, 정말 역겨워요"

매년 늘어나는 조기유학과 어학연수를 보면서 영어교사인 나 또한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2010년부터 초·중·고교 영어교사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국제화 시대 영어교사로서 살아남기 위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내와 함께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1년 간의 어학연수였다. 주위 선생님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내 생각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한 달여 동안 인터넷이나 유학원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영어권 나라를 찾아보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필리핀 '바기오'였다. 마침내 작년 12월 30일, 우리 가족 4명은 일년 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짐을 꾸려 정든 고국을 떠났다.

어학연수를 떠나는 나에게 대부분의 동료 교사들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오라"는 이야기보다 "1년 뒤 돌아올 때는 꼭 담배를 끊고 재회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농담 섞인 말을 더 많이 했다. 동료 교사들의 이 말에 나는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애연가, 최대한도의 담배를 사들고 필리핀으로




ⓒ 오마이뉴스 안홍기

해외 어학연수지에서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었으나 애연가인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은 담배였다.

특히 필리핀 담배는 국산담배에 비해 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국산 담배를 많이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있고 해서, 출국 전 공항면세점에 들러 내가 살 수 있는 최대한도의 담배를 샀다. 사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담배를 한꺼번에 사본 적은 없었다.

필리핀 바기오에 도착하여 몇 달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바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았다.

모든 공공건물마다 금연 장소와 흡연 장소가 확실히 구분이 되어있었으며 사람들 또한 그 규정을 잘 지키고 있었다. 특히 식당에서의 현지인들의 흡연 매너는 선진국 국민 이상이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한번은 가족들과 함께 유명한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금연석과 흡연석으로 구분이 되어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담배를 즐겨피우는 나는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하기도 전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흡연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금연석에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었으며 흡연석에는 일부 한국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사람들의 식탁 위 빈 그릇과 술병 안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져 있었다. 한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꼴불견이 이곳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창피했다. 그러나 식당 종업원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담긴 그릇을 열심히 치울 뿐이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식사를 하던 우리 두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계속해서 내 눈치만 살폈다. 아마도 그건 담배를 피우는 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3월 중순쯤이 되자 이곳으로 오기 전에 사가지고 온 국산 담배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곳 생활을 하면서 문화적인 충격을 느낄 때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으로 담배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하루에 담배 2갑 이상 피우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담배를 더 많이 피운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침내 3개월도 채 못 되어 필리핀 담배를 사 피워야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필리핀 담배는 국산 담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였으나 질에 있어서 훨씬 못 미쳤다. 그건 담배를 피우고 난 뒤 입에서 나는 냄새에서 쉽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냄새는 워낙 독해 담배를 직접 피운 나 자신이 맡아도 역겨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자비로 유학을 온 내가 여기까지 와서 비싼 한국 담배를 피울 형편은 되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필리핀 담배를 피우고 난 뒤부터 나에게 이상한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내를 비롯하여 우리 두 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도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나의 입에서 나는 구린내를 아이들 또한 분명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과 스킨십을 해 본 지도 오래된 것 같았다.

그런 사실을 알고 담배를 끊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담배를 끊어야 되겠다는 결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어학연수를 받기로 한 대학 교내에서는 흡연이 금지되어 있었고 담배를 피우려면 학교 밖으로 나가야 했다. 강의실에서 교문 밖까지는 걸어나가려면 5분 이상이 걸린다. 다음 강의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라도 쉬는 시간 10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만 했다.

매번 그런 불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담배피우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한번은 짧은 시간 내 담배를 사러 갔다가 강의시간에 지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강의실 문을 열자 교수님을 비롯하여 함께 강의를 듣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런데 자리로 돌아가 앉자 주위 사람들이 코를 막으며 인상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 뒤, 옆에 앉아 있던 필리핀 여자로부터 쪽지가 건네졌다.

"당신, 한국사람 때문에 강의를 들을 수가 없어요. 당신 몸에서 나오는 '담배냄새' 정말이지 역겨워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제발 제 옆에 앉지 마세요."

그 쪽지를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제야 그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을 그 사람들은 불쾌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로 국적까지 들먹이면서 필리핀 현지인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에 나는 모멸감마저 느껴졌다.

만리이역에서 다시 위기... 그래, 끊어보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현지인이 내게 보낸 그 쪽지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은근히 화가 나 연신 줄담배를 피웠다.

택시기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창문을 열고 운전에만 몰두하였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 기사는 나에게 단 한 마디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착하여 요금을 받고 잔돈을 건네주면서 기사는 꾹 참고 있었던 말 한마디를 영어와 따갈로그어(필리핀 모국어)로 건넸다. 분명히 '당신 같은 한국사람'은 알아들었는데 그 다음 따갈로그어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여 그 기사가 내게 말한 따갈로그어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의미가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또 한번 충격을 받게 되었다.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자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동정은커녕 아내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한심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여보, 이번 기회에 담배를 완전히 끊어보는 것이 어때요? 그리고 담배를 피우기 전에 한번만 비 흡연자의 입장이 되어보세요. 그러면 아마 오늘과 같은 일은 당하지 않았을 거예요. 무엇보다 당신 한 사람 때문에 모든 한국 사람들이 당신 같은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걱정되네요."

사실 하루에 2갑 이상 담배를 피우는 나에게 담배를 끊으라는 이야기보다 더 잔인한 말은 없었다. 흡연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담배를 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매번 작심삼일이었고 고작해야 5일이 전부였다.

이제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 온 것이었다. 그것도 고국이 아닌 타국인 필리핀에서 말이다. 이 곳에서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결국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꼴'이 되고 만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소한 그 바가지의 물이 밖에서는 새지 않도록 막는 것이 국민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의 행동이 외국에서 보여주지 말아야 할 일종의 추태에 속한다고 생각하니 한국 사람으로서 수치심마저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한편으로 이 위기가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만 조심스럽게 금연선포식을 하고난 뒤 다시 한번 금연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일주일이 고비인 만큼 우선 아내에게 이 기간 동안 나의 금연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만에 하나라도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을 경우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막내 녀석에게만은 두 번 다시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다음 날 담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선 가지고 있던 담배와 재떨이 모두를 없애버렸다. 그리고 주위 환경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아쉽지만 일주일 강의 모두를 빠지기로 하고 대신 가정학습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식후연초도 마다하고 친구의 권유도 뿌리쳤다

담배를 피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흡연 충동이 제일 많이 생길 때가 식사를 하고 난 뒤다.

식후 궐련이 천하일품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이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식사를 하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서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금단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사탕이나 과자류를 먹기보다 물을 마셨고 그래도 힘이 들면 양치질을 자주 했다.

금연 3일째 되는 날, 하마터면 결심이 무너질 뻔 하였다. 며칠 동안 누구와의 연락도 없이 두문불출하자 나의 안부가 궁금했던 지인이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마침 그는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어떻게 유혹을 뿌리칠 지가 관건이었다.

술과 담배 두 가지 모두를 사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치통이었다. 그리고 지인이 담배를 권할 때마다 이 핑계를 대며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7일째 되는 날, 금단증세가 최고조에 달했다.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났고 머리가 몽롱해 지더니 가슴이 답답하여 미칠 것만 같았다. 아내는 신경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은 일체하지 않았으며 매사 미소로 나를 대해주었다. 그리고 필리핀 현지인이 내게 한 말을 다시 상기시키며 담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사실 일주일 동안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게 된 데는 정말이지 아내의 공이 컸다. 그날 저녁 아내는 결혼하여 남편이 이렇게까지 멋있게 보인 적이 없었다며 계속해서 나를 추켜세웠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뒤, 아내는 지금까지 감추어 왔던 나의 금연 사실을 우리 아이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믿어지지가 않는 듯 한동안 내 얼굴만 쳐다보았고, 막내 녀석은 내게 달려와 시키지도 않은 스킨십을 했다. 나의 금연이 무척이나 기뻤던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아내는 이곳에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나의 금연 사실을 알렸다. 이 사실에 모든 사람들은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으나 그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쁘게만 들리지 않았다.

일주일 뒤, 강의실에 다시 나타났다. 현지인들은 나 때문에 찌든 담배 냄새를 다시 맡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똑같은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에만 집중하였다.

예전에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담배를 피우기 위해 제일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가곤 했던 내가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모습이 궁금했는지, 전에 쪽지를 건넨 현지인이 내게 다가와 그 이유를 물었다. 그제야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있게 담배를 끊었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믿기지가 않는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한국사람, 대단해요, 존경합니다"를 연발하며 나의 금연 사실을 강의실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순간 강의실에는 박수갈채가 울려퍼졌다.

그 때의 환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고국이 아닌 이곳 필리핀에서 마치 내가 금연 홍보대사로 임명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필리핀 강의실에서 박수갈채를 받다

담배를 끊은 지 벌써 3개월이 되어간다. 이제 남은 것은 어학연수의 승패이다.

그런데 두려움보다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그건 20년 이상 피워 온 담배를 끊을 정도로 독종인 내가 '무슨 일이든 못해내랴'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1년 뒤, 영어를 배우러 이 곳 필리핀까지 온 내가 금연까지 성공하여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일석이조'의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기 위해서라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마다 그 유혹에 맞서 싸워 이겨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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