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8일 토요일

[만화] 둘째
[만화] 40개월의 신화

2009년 3월 25일 수요일

[뉴스] ‘어린이 처세술’ 성행 한국의 미래가 멍든다

ㆍ서점가 별도 코너 운영…재테크 캠프 등도 봇물
‘어린이 처세술’이 성행하고 있다. 서점에는 어른들의 처세술을 동화로 꾸민 ‘어린이 자기계발서’가 넘치고, 어린이 캠프에서는 ‘재테크’를 가르친다. 사회가 처세와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나라의 미래인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24일 서울 종로 ㅇ서점은 매장 안에 ‘어린이 처세’라는 코너를 별도로 마련해 두고 있다. <성적 향상을 위한 마인드맵> <유머가 뛰어난 어린이가 성공한다> <초등학생 때 꼭 키워야 할 77가지 사회성 이야기> 등의 책이 눈에 띄었다.
ㅂ서점도 ‘아동·키즈’ 코너에 ‘아동 처세’ 책장을 따로 마련했다. ‘부자 시리즈’와 <인간관계 서바이벌> 등의 사회생활 생존법을 가르쳐주는 서적이 쌓여 있다.
책 내용은 어른들의 처세술서 못지않다. <리더를 꿈꾸는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101가지>란 책은 ‘힘들더라도 겉과 속이 달라야 한다’ ‘기상 캐스터처럼 밝고 명랑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체험을 통해 재테크를 배울 수 있는 어린이 경제캠프도 인기다. 캠프의 대상은 대략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이다. 2박3일 동안 보험·증권·펀드·부동산 등의 모의투자에 참여한다. 지난 겨울 캠프에 아들을 보냈던 한 학부모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후기를 통해 “펀드·주식·보험·은행에 대해 술술 말하는 아들을 보며 정말로 마음이 흐뭇했다”고 밝혔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사회구조에 조급함을 느끼는 부모들과 이에 편승한 출판업계가 아이들을 자기관리와 처세에 나서도록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들에게는 단편적인 지식과 이해타산적인 자기계발서보다 다양한 인문서를 통해 인간과 세상을 통합적으로 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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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당황스러운 기사입니다.  난 20대초중반때도 "처세술"은 '나쁜것, 치사한것' 그러한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물론 그 후론 그런 어린 생각은 안하지만, <어린이 처세술>은, 좋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나쁜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잘 모르겠습니다.

“내 죽음을 103세 노모에게 알리지 마세요”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32401072732060002&w=nv

中 전인대 부위원장 셰페이, 99년 죽기전 간곡 유언

한강우기자 hangang@munhwa.com

▲ 23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리춘 할머니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광저우르바오 사진

노모가 상심할까봐 자신의 죽음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부탁한 막내아들, 그리고 10년이나 아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다 그리움 속에서 죽어간 113세의 노모. 이 두 사람의 사연이 중국인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들은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에서 지난 17일 숨진 리춘(李春) 할머니와 10년 전 사망한 그의 아들 셰페이(謝非). 지역에서 발행되는 광저우르바오(廣州日報)는 23일 “리 할머니 가족의 삶은 장수의 비결뿐 아니라 아름다운 거짓말을 남겼다는 점에서 많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1896년 3월 17일생인 리 할머니의 가족들은 지난 1999년 막내아들 셰가 숨지자 이 사실을 10년이나 비밀에 부쳤다. 아들의 죽음에 마음 아파할 어머니를 생각해 셰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에 따른 것이다. 광둥성 당서기라는 고위직에 있었던 셰는 숨지기 한 해 전인 1998년 3월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에 선출되면서 수도인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근무하다 1년만에 백혈병이 악화해 67세를 일기로 숨졌다.
셰는 숨지기 직전 103세의 고령인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봐 자신이 죽더라도 어머니한테는 알리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이후 가족들은 “왜 셰가 집에 오지 않느냐”는 리 할머니의 물음에 “바빠서” 혹은 “몸이 좀 안좋아서” 등으로 거짓말을 했다. 2001년에 막내며느리마저 숨지자 리 할머니는 “막내는 물론 며느리도 안온다”고 섭섭해했지만 가족들은 셰의 죽음을 알릴 수 없었다.
가족들은 막내가 살아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해 명절만 되면 리 할머니에게 선물을 보내 셰가 보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리 할머니는 임종 직전에는 “뭐가 그리 바빠서 10년이나 오지 못할 정도냐”며 섭섭해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중국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리 할머니는 90세까지 밥과 설거지 등 가사를 도맡아 했고 채소를 사기 위해 야채시장에서 줄을 서는 것도 즐겼다. 그는 매일 가족들에게 신문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으며 노년에는 10시간씩 잠을 자고 매일 차와 토속주 한컵씩을 마시면서 무병장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3월 24일 화요일

[사회]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1002144002&Section=03

핀란드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1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1위다. 그래서 알콜 중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히곤 한다. 날씨가 좋은 금요일 저녁이면, 술병을 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5월 1일 노동절에는 도심 한복판에서 거창한 술판이 벌어진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시민과 함께 건배를 외친다.
이렇게 술과 가까운 문화 탓인지, 고등학생들도 술을 많이 마신다. 한국에도 술을 마시는 고등학생이 종종 있지만, 핀란드에서는 공원 등 눈에 띄는 곳에서 마시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 다르다.
핀란드, 공부하는 시간은 가장 적은데 학력은 1위

▲ 젊은이들이 주말 오후 헬싱키 시내 공원에 모여 앉아 있다. ⓒ프레시안

술 병을 들고 몰려다니는 고등학생들을 보며, 이 나라가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조사)에서 종합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물론, 청소년 시기에 술을 접하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분방한 문화 속에서도 높은 학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핀란드는 수업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 사교육도 거의 없다. OECD가 학생들이 학교 밖·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조사한 결과 역시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PISA 순위는 최상위권이다. 핀란드를 바짝 뒤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핀란드와 달리 사교육이 활발하고, 학생들이 학교 밖·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매우 긴 편이다.
"수학 숙제 있으면 마음이 매우 무겁다"…한국 33.2%, 핀란드 6.7%

▲ 주말 오후, 헬싱키 시내 풍경. 젊은이들이 중앙역 근처 계단에 모여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프레시안

그런데,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핀란드는 학력과 학습흥미·동기가 모두 높은 반면, 한국은 학습흥미·동기가 최하위권이다.
2003년 PISA 수학 부문 결과를 보면, 한국은 홍콩과 핀란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도와 학습 동기는 전체 41개 나라 가운데 각각 31위와 38위였다.
당 시 학습태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수학 숙제를 하려고 하면 마음이 매우 무거워진다"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33.2%, 일본은 51.5%였다. 반면, 핀란드는 6.7%에 그쳤다. OECD 평균은 29.2%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안절부절 못한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국 학생들은 44.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일본 학생들은 42.1%로 비슷했다. 핀란드는 15%, OECD 평균은 29.0%였다. 학습흥미·동기에 관한 답변에서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교육제도 및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염불 외기'가 수학 교육을 대신한 사회
수 학 문제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린 학생들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어른들 역시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 공부는 군 복무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라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사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글이 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어찌나 즐겨 읽었는지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기자의 위편삼절은'수학의 정석(定石)'이었다. 읽고 풀고 베개 삼아 베고 자다 일어나 다시 읽고 풀다 보니 책이 걸레처럼 돼버렸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1000쪽 넘는 책 두 권이 거의 암기(暗記)된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 덕에 입시 점수는 좋았지만 암기의 힘은 끈덕졌다. 요즘도 꿈속에서 기자를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로 몰아넣고 진땀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달 27일자 <조선일보> 기사 일부다. 문갑식 기자가 <수학의 정석> 시리즈 저자인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을 인터뷰한 기사다.
같은 지면에 문 기자가 쓴 글을 보면, 더 적나라한 이야기도 나온다.
"1977 년 겨울 서울 종로2가 뒷골목 학원가가 생각납니다. 중3 겨울방학 때 '기본수학의 정석'과 '고교기본영어'를 수강했습니다. 수학강사는 염불(念佛)처럼 공식을 외우게 했습니다. '말은 초뿔엔마일의 공차'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첫째는 수열의 말항(末項) 구하는 것, 두 번째는 수열의 합(合) 구하는 공식입니다. 수학 정석의 저자이자 상산고를 최고의 자립형사립고로 만든 홍성대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떠오른 31년 전 기억입니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인데…"한국 학생들은 왜 가만히 있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한국남자들끼리는 재미있지만 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문제풀이 요령을 염불처럼 외운 이야기도 역시 '국내용'일 뿐이다.
이 처럼 엽기적인 방식으로 공부한 이야기를 북유럽 사회에 전하면, 한국에 대해 아주 이상한 인상을 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핀란드 학생들이 "수학 숙제를 하려고 하면 매우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대답한 비율이 6.7%에 그친 데서도 눈치 챌 수 있는 사실이다.
스 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한국 학생들은 문제풀이 요령을 외우는 것으로 수학, 과학 공부를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과장해서 이야기 한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느냐"라고 물었다. 재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일을 강요하는데 저항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집합론을 창시한 수학자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라는 말을 남겼지만, 수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서 '집합'을 배우는 한국 학생들은 "수학의 본질은 고통"이라는 말에 더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수학과에 가리라고는…"
그 래서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북유럽으로 건너가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문 기자보다 세 살쯤 어린 스웨덴 교포가 겪은 일이다. 정혜영 <프레시안> 스웨덴 통신원의 남편인 그는 1980년대 초에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당시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스웨덴에서도 고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스웨덴 사민주의가 낳은 성과가 절정을 구가하고 있을 당시, 그가 놀란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수학이 재미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그였다.
뒤 늦게 수학의 재미에 눈을 뜬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수학과에 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스웨덴 방정식과 한국 방정식이 다를 리는 없다. 수학 교과서 속에 담긴 개념은 만국 공통이다. 단지,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는 악몽을 꾼다는 문갑식 기자도 스웨덴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면, 수학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을 '병리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권장하는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칸토어가 말한 '수학의 본질'로부터 계속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수 학 교과서 속 개념을 차분히 숙지할 여유 없이 문제 풀이 요령을 외우기에만 급급한 풍토에서는 "단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제약만 받을 뿐, 어떤 생각도 허용되는" 수학의 자유를 실감하기 어렵다. 또, 눈에 보이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추상적 사고를 제대로 경험하기도 힘들다.
"□+□=10"과 "1+9=□"의 차이…"'생애 첫 지식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나"

▲ 라또까르따노 학교 복도. 남는 공간에 책상과 의자, 직소퍼즐이 있다. 비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퍼즐을 맞추며 어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프레시안

스웨덴 학교에서는 덧셈·뺄셈을 가르칠 때, "□+□=10. □에 각각 들어갈 숫자는?"과 같은 유형의 문제를 자주 출제한다. 아이들은 "1과 9, 2와 8,…9와 1" 등 여러 개의 답을 적는다.
초 보적인 산수를 배울 때부터 "문제의 답은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배어든다. 음수와 양수, 유리수와 무리수, 실수와 허수 등 수(數)에 대한 개념이 넓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어릴 적 접했던 문제의 답이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만났던 산수 문제의 답은 "1과 9, 2와 8,…9와 1"만 있는 게 아니라 "-79와 +89, 5.13과 4.87, 1+10i와 9-10i…" 등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 □에 들어갈 숫자는?"과 같은 문제가 주를 이루는 한국, 일본 등과 다른 대목이다. '생애 첫 지식 활동'을 답이 하나인 문제로 시작하는 셈이다.
산 수를 익히는 것은 추상적 사고를 하는 첫발을 떼는 작업이다. 이전까지는 사과, 배, 엄마, 아빠 등의 낱말을 익히는 수준에 머무르던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 배, 엄마, 아빠 등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지만 하나, 둘, 셋은 그렇지 않다. 숫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개념화하는 데 주로 쓰이지만, 실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 런 개념을 처음 익힐 때, 답이 하나뿐인 문제로 시작하는 것과 답이 무궁무진한 문제로 시작하는 것은 얼핏 사소해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다. 이런 차이가 훗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창의와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
평가가 교육의 목적으로 통하는 한국ㆍ일본
한국, 일본 등에서는 왜 '답이 하나인 문제'로 산수를 가르칠까? 이 역시 '답이 여러 개인 질문' 이다. 콕 짚어서 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답이 여러 개인 문제'로 산수를 가르치기 어려운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 표적인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게, '평가'가 목적이 돼 버린 교육 문화다. 평가는 아이들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그런데 평가 결과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에서는, '평가 점수를 잘 받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 버린다. 이렇게 되면, 답이 모호하거나 무수히 많은 문제는 내기 어렵다. 답이 선명한 문제, 그래서 평가 결과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기 힘든 문제만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 문제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어른이 돼서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답이 모호하거나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라는 뜻이다. 답이 하나인 문제를 푸는 데만 능해서는 좋은 어른이 되기 어렵다.
반 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평가는 수업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라는 입장에 충실한 편이다. 이곳 교사들이 교육에 대해 유난히 더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는 문화' 때문이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설명이다.
성적표에 '등수'가 없다
핀란드와 스웨덴 모두 7세~15세까지의 의무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9학년제 기초학교(종합학교)가 의무 교육 기관이다. 단, 핀란드에서는 원하는 학생에 한해 10학년까지 다닐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기초학교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 때 처음으로 성적표를 받는다. 핀란드에서는 1~2학년 때는 점수가 아닌 문장 표현으로 된 성적표를 받는다. 3학년 이상이 되면, 성적표에 평점이 나오기도 한다. 점수에 따른 평가를 실시할지 여부, 점수를 매기는 기준 등은 지방 교육위원회가 정한다.
성적표에 점수가 기재돼 있다면, 당연히 '등수'도 매겨져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의무교육 기간 동안에는, '등수 매기기'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또 굳이 '등수'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거의 없다. 평가의 성격 역시 다른 학생과 비교하기 위한 게 아니다.
게다가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일제고사도 금지돼 있다. 이미 폐지된 일제고사를 부활시킨 한국과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정답이 없는 과제에 대한 주관적 평가

▲ 라또까르따노 학교에 딸린 운동장. 핀란드 학교는 대부분 규모가 작다. 넓은 공터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인근 공원을 이용한다. ⓒ프레시안

'등수'가 무의미한 문화는 수업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북유럽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특정 주제에 대해 조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아이들이 똑같이 푼 뒤, 정답을 택한 비율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에서는 객관적인 '등수'가 매겨질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처럼 뚜렷한 정답이 없는 과제에 대해 교사가 평가한 내용에 대해서는 등수가 큰 의미가 없다. 성적표에 기재되는 점수는 학생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학생, 학부모들도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물론, 교사를 믿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화는 특히 핀란드에서 견고한 편이다. 스웨덴 등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 상대적으로 강해서 사회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개인별 평가가 아닌 팀별 평가…자기 점수만 챙기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 라또까르따노 학교 복도.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소꿉놀이 용품이 배치돼 있는 게 인상적이다. ⓒ프레시안

그리고 북유럽 학교에서 가장 흔한 수업 방식은 팀(Team)을 이뤄 진행하는 협동 작업이다. 이 경우, 평가 역시 팀 단위로 이뤄진다. 팀에 속한 학생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팀 전체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학 력 수준이 높은 아이도 팀 성적이 나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팀 구성원은 혼자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또, '혼자서만 똑똑한 사람'보다 팀워크(Teamwork)에 능한 사람이 기업과 정부에서 더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실용적인 고려도 작용했다. 자기 점수를 높이는데만 골몰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한국 교육과 대조적이다.
수업에서 협동 작업을 진행하는 팀은 학력 수준이 서로 다른 아이들로 구성된다. 교사는 각각의 팀이 학력과 성격 등 여러 면에서 최대한 다양한 아이들로 구성되도록 배려한다.
학력 수준이 다른 아이들끼리 계속 대화하면서 개념을 터득한다

▲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다." 수업에 뒤쳐진 아이들을 위한 별도 수업 장면. ⓒ프레시안

기 자가 헬싱키에 있는 라또까르따노 학교를 방문했을 당시, 5학년 교실에서는 과학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교사가 던진 질문에 대해 아이들이 팀 단위로 토론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인터넷과 도서관을 이용해 미리 관련 자료를 찾아왔다. 서로 다른 자료를 갖고 있는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같은 팀 안에서도, 어떤 아이는 이미 관련 자료를 충분히 읽었다. 다른 아이는 자료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토론해서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앞에 나가서 팀이 찾아낸 답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팀 단위 토론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교실은 시끄럽게 달아오르고, 교사는 가만히 지켜본다.
이 과정에서 관련 개념을 먼저 깨닫는 아이가 나온다. 이 아이가 다른 팀 구성원에게 스스로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여전히 엉뚱한 질문을 퍼붓는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먼저 이해한 아이도 설명을 계속 보완하고, 스스로 이해한 바를 되짚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팀 구성원 대부분이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교사가 제시한 문제의 답을 찾는다.
토론 과정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도 주눅 드는 기색이 없다. 이해가 안 되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남보다 조금 먼저 깨달아서, 수업 내내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던 아이들은 대화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키운다.
토론에서 뒤쳐진 아이들, 그들을 위해 학교와 교사가 있는 것

▲ 라또까르따노 학교 사뚜 홍깔라 교장. ⓒ프레시안

이 런 설명을 듣고서, 궁금증이 일었다. 학습 속도가 유난히 더뎌서 팀에 기여하지 못하는 학생이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없을까.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교사에게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과연?' 그래서 이 학교 사뚜 홍깔라 교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의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끝내 토론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학교와 교사의 역할은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수업에서 다루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교육과정을 별도로 마련한다.
아 이들이 이런 과정을 이수하는 것에 대해 창피스러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력이 낮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와 교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문화는 학교와 사회에서 학력 차이에 따른 차별을 겪지 않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다."
사 뚜 홍깔라 교장은 이야기를 마치며 학교를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boat)'에 비유했다. 출렁이는 배 위에서는 한 명만 몸을 잘못 움직여도 배가 균형을 잃고 뒤집어진다.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한 명만 생겨나도, 학교는 제 구실을 못하는 셈이라는 뜻이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를 시작하며 :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사회]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1007144808&Section=

핀란드에는 '친일파'가 많다.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가진 이들이 흔하다는 뜻이다. 이 나라를 오래 지배했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한 이유다. 이런 반감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꺾은 작은 섬나라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핀란드가 독일, 일본 등과 같은 편에 섰던 사실도 한몫했다. 1939년 겨울, 부동항(不凍港, 얼지 않는 항구)을 탐낸 러시아의 침략으로 영토의 10%를 잃어버린 핀란드가 "적의 적은 동지"라는 판단에 따라 러시아의 반대편에 섰던 것.
물론, 이런 호감은 일방적이었다. 일본에서 '친핀란드파'라고 할만한 사람은 드물었다. 폐허 위에서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이 대륙 반대편에 있는 추운 나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별로 없었다.
모방의 나라 일본, 핀란드 교육에 관심 갖다
하 지만, 최근 일본에서 핀란드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조사) 결과가 이유다. PISA 2006 수학 평가에서 일본 고등학생은 10위를 기록했다. 읽기 능력 평가에서는 14위에 그쳤다. 3년 전보다 각각 4위, 1위씩 후퇴한 결과다.
일본 교육계가 들썩였다. 일본 학생들도 한국처럼 혹독한 입시 교육에 시달린다. 그런데 늘 PISA 1등을 차지하는 핀란드는 평균 학습 시간이 가장 짧다. 또 아이들의 학습 만족도 역시 1위다. 괴로움을 꾹 참고 공부한 일본 학생들이 실컷 놀면서 지내는 핀란드 학생들에게 한참 뒤지는 셈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자신보다 앞선 사례를 배우는 일본 사회의 순발력이 발휘됐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 유력 신문은 핀란드 교육에 관한 분석 기사를 여러 차례 실었다. NHK 등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출 판계 역시 분주해졌다. 핀란드 교육을 다룬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졌다. 이 가운데 일본 츠루분카 대학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쓴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를 보완한 책이 <경쟁을 벗어나 세계 최고의 학력으로-핀란드 교육의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한국에서 번역돼 나왔다.
또, 일본 안에서 핀란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치솟자, 주일본 핀란드 대사관은 핀란드 교육을 알리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경쟁 없이 최고가 된 비결"
핀 란드 교육에 대한 일본 교육계의 관심은 "경쟁 없는 교육이 높은 성취도를 거두는 이유"에 맞춰져 있다.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괴로움을 참고 견뎌야하며, 이 과정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일본 사회 주류의 오랜 통념과 배치되는 사례인 까닭이다.
물 론, 핀란드 교육에 관심을 기울인 게 일본만은 아니다. PISA 결과가 나온 뒤, 핀란드 정부에 '1등의 비결'을 묻는 세계 언론의 취재 요청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11가지 교육 원칙을 공통 답변으로 발표했다. 내용은 이렇다.
1. 가정, 성별, 경제 상황, 모국어와 관계없이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할 것.
2. 지역에 관계없이 교육 활동이 가능할 것.
3. 성별에 따른 분리와 차별을 부정할 것.
4.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할 것.
5. 종합제 학교 운영을 통해, '선별하지 않는 기초 교육'을 실시할 것. (특정 기준에 따라 골라낸 아이들만으로 채워진 학교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 평준화 교육을 옹호하는 입장인 셈이다.)
6. 전체적인 틀은 중앙에서 조정하지만 각 지역의 실정에 맞게 실행할 것. 교육행정은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입장에 서서 유연하게 이뤄져야 함.
7. 모든 교육단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협동하여 활동할 것. (윗 학년과 아래 학년, 초등교육과정과 중등교육과정 사이에 긴밀한 연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
8. 학생의 학습과 복지에 대해 개인의 특성에 맞게 지원할 것.
9. 시험과 성적에 의한 등수 제도를 없애고, 학생의 발달 시점에 맞춰서 학생을 평가할 것.
10. 교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
11.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학습 개념을 도입할 것.
협동을 통한 개념 형성…'사회적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수업 설계

▲ 헬싱키에 있는 라또까르따노 학교 식당 위에 있는 조형물. 핀란드 학교에는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많이 설치돼 있다. 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해서 창의성을 붇돋우기 위한 장치다. ⓒ프레시안

이들 11가지 원칙 가운데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마지막 원칙이다. 핀란드 학생들이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 학력을 갖게 된 결정적 요인이 '사회적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교육방식이라는 것.
' 사회적 구성주의'가 뭘까. 교육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구성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구성주의에 대해 알아야 한다. 구성주의에 따르면, 지식은 교사의 머릿속에서 학생의 머릿속으로 복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식은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하게 객관적인 지식은 없다. 이렇게 보면, '사실(fact)'이 하나여도, '지식'은 학습자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그 런데, 사실을 놓고 지식을 구성하는 작업은 혼자 진행할 수 없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더구나 모든 지식은 사회적 '맥락(context)' 속에서만 고유한 의미를 띤다. 얼핏 사회와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자연과학 지식조차 이런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생각이 구성주의 위로 겹치면서 나온 개념이 '사회적 구성주의'다.
협동을 통해 학생들이 개념을 형성하는 핀란드식 수업 방식은 철저하게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라 설계돼 있다. 핀란드 교육당국자들은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수업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고양한다고 믿는다. 교사가 객관적인 지식을 학생에게 전수한다는 발상에 바탕을 둔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미 나와 있는 모범답안을 모방하도록 유도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교육에서 경쟁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 애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치열한 경쟁은 모방하는 능력을 키우는데는 유리하지만, 창조성을 소모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기르려면, 경쟁보다 협동을 장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교육 당국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다"
그 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고도로 철학적인 개념인데, 핀란드 교사들이 이런 개념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후쿠타 세이치 교수가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이르멜 하리넨 보통교육국장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르멜 하리넨 국장은 "그렇다. 핀란드에서는 모든 교사들이 '사회적 구성주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대답이 과장된 것인지, 실제에 정확하게 부합하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힘들다.
다만, 핀란드 학교에서 교사에 따라 수업 내용이 다른 경우가 흔하다는 점은 사실이다. 지식은 학생이 스스로 구성해가는 것이므로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수업 방식도 드물다. 대개의 수업이 팀 단위로 진행된다. 평가 역시 팀 단위로 이뤄진다. 그래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학생과 경쟁하며, 자기 점수만 챙기는 학생은 나타나기 어렵다. 한 교실 안에 있는 팀들이 각기 다른 내용을 익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교실 안에서 획일적인 척도에 따른 경쟁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진도의 압박"이 없다…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
그 런데 구성주의, 사회적 구성주의 등은 한국 교육계에 낯선 표현이 아니다. 현행 7차 교육과정이 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학생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7차 교육과정의 취지가 실제 수업에서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국 교사들은 구성주의, 혹은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라 수업을 하기 힘든 이유로 "진도의 압박"을 꼽는 경우가 많다. 학생의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교사가 같은 속도로 교과 진도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개념을 형성하도록 할 만한 여유를 갖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핀란드 학교에서 사회적 구성주의에 따른 수업이 잘 진행될 수 있는 이유 한 가지가 드러난다. 핀란드에서는 개별 교사가 사실상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도록 돼 있다. 국가는 큰 틀에서 개별 교과교육의 목표를 정할 따름이다. 이런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교재를 택해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지 여부는 전적으로 개별 교사에게 맡겨져 있다. 교사마다 수업 내용과 진도가 다를 수 있는 배경이다.
'표준'은 경계 대상이다…등수 매기는 시험은 없다
학 생들이 교사에 따라 다른 내용을 익히고 있으므로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통 평가도 불가능하다. 또 학력에 대한 표준을 정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표준(Standard)'이라는 낱말은 핀란드 교육에서 경계 대상으로 여겨진다. 모든 학생이 따라야 할 표준이 없으니, 개별 학생이 표준에 얼마나 다가갔는지 측정하기 위한 시험도 없다.
핀란드 학생들은 종합학교(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친 과정)을 졸업하는 16세가 돼서야 첫 시험을 치른다. 종합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남과 비교하는 시험을 겪지 않는다. 두 번째 시험은 인문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르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이다.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것은 핀란드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웨덴 등 북유럽 교육이 대부분 이런 특징을 띠고 있다. 안승문 스웨덴 웁살라 대학 객원연구원이 겪은 사례에서도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
한 주제를 파고들면서, 탐구하는 법을 익힌다
안 연구원의 딸은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다 웁살라에 있는 종합학교로 전학했다. 딸은 지금 학교에서 받는 역사 수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학기 내내 '로마'만 다뤘다고 했다. 로마 역사에서 주제를 정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업을 학기 내내 했다는 것.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이런 식의 수업이 흔하다. 대학 강의처럼 한 가지 주제만 다루는 이런 식의 수업은 교과 내용 전체에 대해 고르게 시간을 안배하는 한국 수업과 많이 다르다.
학 기 내내 한 가지 주제만 다루면, 학생들이 고른 지식을 갖추기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 실제로, 학생들은 천차만별의 지식을 갖게 된다. 어떤 학생은 로마 역사에 정통한 반면, 프랑스 혁명사에 대해서는 백지에 가깝다. 다른 교사와 함께 수업한 학생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해 해박하지만, 고대 그리스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문제를 풀도록 요구하는 게 무의미해진다.
이런 식의 교육이 가능한 배경에는 단편적인 지식을 고르게 습득하는 것 자체는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있다. 오히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서, 지식의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지식 자체보다 탐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주제에 대해 폭넓은 자료를 수집해서 고유한 시각으로 엮어낸 경험은 다른 주제를 탐구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고른 지식을 쌓기보다 깊은 통찰력을 키운다
그 리고 한 학기 내내 '로마'를 주제로 보고서를 쓴다면,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다. 또 특정 시기에 명멸한 숱한 인간 군상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로마'라는 프리즘으로 인간과 사회의 보편적 특징을 살피는 것. 이 정도면 역사 수업의 목표로 충분하다는 게 북유럽 교사들의 생각이다. 모든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범위는 매우 좁게 설정돼 있다.
학생들이 단편적인 지식을 외우기보다 개념을 깊이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수학 수업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수학 시간에 학생들이 각각 다른 문제를 풀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복잡한 응용문제를 모든 학생이 풀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관심 있는 학생만 풀면 된다.
대신, 교사는 모든 학생이 방정식, 함수 등 추상적인 개념을 깊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문제 풀이는 이런 개념이 구체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소개하는 절차일 뿐이다. 수학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도 문제만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내면 높은 평가를 받도록 돼 있는 한국, 일본 등과 다르다.
교사는 전문직…자율성에 걸맞은 책임감을 요구받는다

▲ 헬싱키 한 종합학교에서 교사 회의가 진행 중이다. 평교사와 교장이 허물없이 대화를 나눈다.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모두 회의 주제가 될 수 있다. ⓒ프레시안

여 기서 의문이 든다. 교사에게 높은 자율성을 보장하는 북유럽 식 교육이 실효를 거두려면,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문제 풀이 요령을 가르치는 수준이라면,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 없다. 하지만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하려면, 교사의 실력이 중요하다.
또 교사가 자율적으로 수업 내용과 교재를 정하도록 돼 있는 상황을 게으른 교사가 악용할 수도 있다. 교육 내용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교사가 학생들이 왜곡된 개념을 익히도록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위험에 대해 북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뚜렷한 답은 없다.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믿을 따름이라고 한다. 이런 경향은 핀란드에서 더욱 뚜렷하다.
핀 란드에서는 교사가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모든 교사가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다. 교직의 사회적 위상도 높다. 안승문 연구원은 핀란드에서 초중등 교사는 한국에서의 대학 교수와 비슷한 위상을 누린다고 전했다. 그래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을 꼽을 때면 교사가 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급여 수준은 높지 않다. 사회적 평균 임금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핀란드 교사들은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주당 35~40시간쯤 일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다보면, 갑작스럽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노동시간이 확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휴가일수는 다른 직업과 비슷하다.
반면, 정신적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핀란드 교육 전문지 <오뻬따야(Opettaja)> 보도에 따르면, 2005년 핀란드 교사 5명 중 1명이, 교장 3명 중 1명이 학부모들로부터 심한 정신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핀란드 학부모들은 교사의 전문성을 신뢰하면서도, 사소한 권리 침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특징이 한편으로는 교사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핀란드에서 교직이 왜 인기가 있을까. '안정적인 직업'이어서? 그렇지 않다. 북유럽 사회는 노동조합이 강력하고, 복지가 잘 돼 있는 편이어서 무슨 일을 하건 고용 불안을 심하게 느끼지 않는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교사, 공무원과 비슷한 안정성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안정성'이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되는 일은 드물다.
"가르치는 즐거움, 협동 속에서 싹 튼다"
핀란드 학생들은 교직을 택하면서 "재미있는 일"이라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 전공이 예능 계열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일의 즐거움'은 직업이나 전공을 택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교 사가 되려는 이들은 보통 "어릴 때부터 남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라고 이야기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대부분의 수업이 협동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보다 조금 먼저 개념을 터득한 학생은 동료들을 돕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보면, 이런 역할을 즐기는 학생들이 나온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이 먼저 터득한 개념을 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법을 늘 궁리한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주로 교육학 계열을 택한다.
동료들과 가장 잘 협동하는 학생이 교사가 돼서 다시 협동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런 순환이 이뤄지는 한, 핀란드식 교육을 향해 쏟아지는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이라는 찬사는 시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 두 번째 키워드는 '코뮌'입니다. 스웨덴의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코뮌'이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키워드를 통해 기초 자치 단체 수준에서 이뤄지는 사회 복지 모델에 대해 살펴볼 예정입니다. 두 번째 키워드 '코뮌'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는 오는 10일 게재됩니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를 시작하며 :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사회]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0206173918&Section=03

 

노는 것 하나 하나가 배우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어린이들은 왜 그렇게 책상 앞에서 하는 공부에만 매달려야 할까. 상급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그리고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우리 아이들은 숙제와 과외, 시험의 중압감에 더 시달리게 마련이다.
10~15세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클럽
이번에는 상급학년들을 위한 방과 후 클럽을 방문했다. 코펜하겐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도시 파룸이라는 곳에 있는 방과 후 클럽으로 10~15세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오 래된 농가를 개조한 이 클럽은 밖에 자전거를 묶을 수 있는 장소가 넓었다. 아이들이 대개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에 선생님들과 그곳에 등록한 아이들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고 클럽에 올 때마다 아이들이 사인을 하는 공책이 있었다.
이 클럽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방에는 부엌시설과 식탁 의자 그리고 한쪽구석에는 텔레비전과 소파 등이 놓여있었다. 식탁과 의자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마침 춤을 가르치고 있었다. 옛날 춤인 미뉴에트였다.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아이들이나 매우 진지하게 연습하는 중이었다.
농가의 헛간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방문한 때가 여름 방학 중이라 아이들이 적어서 한산했지만 대신 그곳의 책임자인 윌라 씨로부터 보다 세심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방과 후 클럽이 여는 시간은 평소에는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방학 때는 오전 10시~ 오후 5시 반까지이다. 총 등록 학생 수는 400명이고 보통 150명 정도가 늘 이 클럽에서 북적인다고 했다.
원래 농장이었는데 어떤 회사가 사들였다가 운영이 잘 안되자 시청에서 빌려서 방과 후 클럽으로 쓸 수 있도록 내주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농가 건물 세 채와 창고며 헛간 등을 그대로 이용해서 공예, 목공, 미술, 재봉, 세라믹, 요리, 풀무질, 활쏘기 등의 여러가지 특별 활동반과 아이들의 쉼터가 곳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 방과 후 클럽을 위한 공간. 헛간을 개조해 만들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꽤 허름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곳이다. ⓒ김영희

자유롭게 클럽을 택하는 아이들
이 방과 후 클럽의 교사는 모두 20명인데 전공에 따라 각자의 반을 맡아서 이끌어가고 있고, 아이들은 맘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이 반, 저 반으로 간다고 했다.
윌 라 씨가 처음 안내한 곳은 목공실과 공예반이었다. 목공실은 온갖 전문적인 도구와 장비가 갖추어져 있어 나무로 무엇이든 못 만들 것이 없어 보였다. 공예반에서는 아이들이 유리구슬과 도자기로 만든 목거리, 반지 등을 보여주는데 디자인이며 솜씨가 상점에서 파는 것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 공예반. ⓒ김영희

마당에 화초들이 많고 온실도 있어 그 속에서는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그 화초를 돌보고, 온실 일 하는 것을 모두 아이들이 맡아서 한다고 했다. 원예에 취미가 있는 아이들이 스스로 한다는 것이었다.

▲ 아이들이 가꾼 화분. ⓒ김영희

"터키 여행에서 배워 온 방식으로 아이들과 바닥에 타일을 깔 거예요"
전 에는 창고였음직한 건물에 들어가니 마구간처럼 칸이 나뉜 큰 우리에 토끼들이 한 마리씩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주위에는 건초들이 쌓여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토끼를 한 마리씩 맡아서 먹이도 주고 매일 관찰하며 기록을 한다고 했다.

▲ 방과 후 클럽에서 토끼를 키우는 아이. ⓒ김영희

조 금 외떨어진 헛간으로 가는 길에 서있는 컨테이너를 윌라 씨가 문을 열어 보여주었다. 바로 훌륭한 음악실이었다. 드럼세트며 기타며 여러 악기들이 있어 밴드 하나쯤은 넉넉히 구성할 정도였다. 음악에 취미 있는 아이들은 여기서 마음껏 연습을 하고 즐기며 행사가 있을 때는 공연도 한다고 했다.

▲ 음악실. ⓒ김영희

윌 라 씨가 맡고 있는 세라믹 반은 벽이 없이 지붕만 씌워놓은 헛간에 들어있었다. 올해의 프로젝트는 바닥 타일 만들기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만든 타일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터키여행을 했을 때 거기서 옛 방식을 배워 와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고 있는 중이라며 다 완성이 되면 그 헛간 바닥에 타일을 깔 예정이라고 했다.
"그 나이대 아이들에겐 비밀스런 장소도 필요하죠"
재 료는 타일가게에서 부스러기 타일, 혹은 헌 타일을 얻어오거나 아주 헐값으로 사온다고 했다. 윌라씨를 보니 이곳의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친다기보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어떤 주제를 정해서 아이들과 함께 만들며 스스로도 즐긴다는 인상이 들었다.
세 라믹 반 옆에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차를 끓여 마시며 놀 수 있게 돌멩이들이 놓여있는데 여간 아늑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헛간 뒤쪽에는 재래식 대장간이 그럴듯하게 차려져 있어서 쇠 다루는 일을 해볼 수도 있고 바로 옆에는 요리교실을 위한 조리대와 오븐이 갖추어져 있어 아이들이 빵을 만들어서 구워 먹는다고 했다.

▲ 아이들이 직접 차를 끓여 마시며, 노는 곳. ⓒ김영희

또 그 옆에는 밧줄을 직접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밧줄 사다리도 만들고 줄타기도 하고 놀 수 있는가 하면, 좁지만 활쏘기도 할 수 있도록 과녁이며 활이 있었다.

▲ 밧줄 놀이를 위한 장소. ⓒ김영희

▲ 활쏘기 놀이를 위한 장소. ⓒ김영희

헛 간 앞의 넓은 풀밭 한쪽에는 울퉁불퉁한 낮은 장애물이 비슷한 것이 연속으로 있어 물어보니 그곳이 토끼 경주장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토끼를 데리고 와서 훈련을 시켜 일 년에 한두 번 토끼경주가 열리는데 그런 야단법석이 없다고 했다.

▲ 토끼경주장. ⓒ김영희

풀 밭 끄트머리에는 짚으로 된 작은 움막집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숨어들기 딱 좋은 만한 곳이었다. 윌라씨는 이 클럽에는 아이들이 숨을 곳이 많다며 웃었다. 그 나이또래의 특성에 맞추어 비밀스러운 장소를 일부러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 움막집. ⓒ김영희

아이들이 학부모를 초청하는 행사
초지 한쪽에서는 고무로 된 간이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것이 보였다. 작년에 일일 장터를 열었던 곳이라 했다.
학부모를 초청해서 1년 동안 만든 것을 보여주고 파는 행사인데 아이들이 주관해서 행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나무를 엮어 가게모양을 만들고 장터에서 통용될 돈도 만들고 하는 식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창고 하나는 우리로 치면 '귀신놀이 집'이었다. 들어가면 으스스하도록 분위기를 꾸며놓아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이었다.
간이 돔 형태로 된 체육관에는 여러 가지 구기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특히 껌껌한 겨울에 실내 핸드볼이나 하키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 바깥은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곳이었다.
다 시 본 건물 쪽으로 오는 길에 들린 별채의 방 하나에는 라디오나 오디오등의 전자제품 부속이 널려있었다. 전기에 소질 있는 아이들이 와서 논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모여 앉아 카드놀이 할 수 있는 방도 있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쉴 수 있는 방도 있었다.
컴퓨터는 두 대뿐…야외 활동을 적극 권장
윌라 씨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곳은 재봉실과 그림 그리는 방이었다. 재봉실 역시 어느 전문 학원 못지않아 보였고 그 옆방에는 여자아이들이 패션쇼 놀이를 할 수 있게 옷이며 천, 화장품, 인형, 종이박스, 패션쇼 그림 등이 쌓여있었다.
그림 그리는 방에는 아이들이 그린 다양한 그림을 문과 벽에 붙여놓았는데 이 클럽에 처음 오는 아이들은 우선 여기에서 그림을 그리며 이곳에 적응을 한다고 했다.

▲ 아이들이 그린 그림. ⓒ김영희

이곳에 컴퓨터는 단 두 대 뿐이라고 윌라 씨는 자랑스럽게 말하며 대개 여름에는 밖에서 보내도록 하고 겨울에 실내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러나 겨울에도 밖에서 활동하는 반이 있고 반드시 밖에서 지내야 하는 기간도 있다고 했다.
일 처리가 다부진 덴마크 대학생, 쩔쩔매는 한국 대학생
성의껏 안내를 해준 윌라 씨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나오면서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기에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라니까 자연히 창의력 있는 교사나 직업인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주위에서 덴마크 대학생과 한국의 대학생이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덴마크 대학생은 일을 다부지게 처리하는 반면 한국 대학생들은 일이 서툴고 쩔쩔매기 일쑤였다.
한국 아이들은 그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면서 자라는데 비해 덴마크 아이들은 어려서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실제 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고 비로소 이해가 갔다.

[사회]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0206161352&Section=03

코펜하겐의 공원에 가면 아주 어린 꼬마들이 단체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공원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보호하는 어른 몇 명과 함께 작은 아이들이 줄지어 길을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는 광경이 쉽게 눈에 띈다.

추운 겨울날도 예외가 아니다. 두툼한 방한복을 입어 꼬마 눈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바깥을 걸어 다닌다
 
도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도록
 
 이것이 바로 '숲 속 유치원'이다. 도시의 어린이들을 보다 많이 자연 속에서 뛰놀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26년 전 처음 설립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실내가 아니라 매일 숲이나 바깥에서 노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은 이런 숲 속 유치원이 널리 퍼져 코펜하겐에만 스무 군데가 넘는단다. 또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아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아야 겨우 자리가 날까 말까란다.

 한국에도 이런 유치원이 있으면 하는 바람에서 숲속 유치원 한 곳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비가 보슬보슬 뿌리는 4월 초.
 
아침 9시 약속시간에 맞추어 유치원 앞으로 가자 부모들이 연방 자전거에 꼬마들을 싣고 와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두리번거리는데 이 유치원의 리더(원장 격)라며 긴 머리의 젊은 여자가 나를 맞았다.
 
유 치원 내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유치원이라기보다 따뜻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다. 이름이 '벤트'라는 그 리더는 그곳의 유치원생이 34명, 교사는 7명이라고 소개했다. 유치원생은 만3세부터 5세까지 받는데 세 살짜리 유아가 절반 이상이라고 하고, 교사는 4명은 정식으로 유아지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나머지 셋은 인턴이라고 했다.
 
숲 속 유치원 교사의 조건, 야외 활동을 좋아할 것
 
숲 속 유치원이기 때문에 교사들도 야외생활을 좋아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데 벤트 자신은 스카우트 단원이었다고 한다.
 
유 치원에서 일한 지 총 24년이 되었고, 그곳에서만 12년 동안 근무했다고, 그제야 자세히 보니 얼굴에 나이 든 흔적은 있지만 날씬한 몸매에 긴 머리가 아직도 젊은이처럼 보였다. 아마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숲 속을 걷다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네 명의 정식 교사 중 남자 교사가 두 명인 점이 특이하게 보였다. 유치원 교사가 되려면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반 교육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7시에서 오후 5시 사이가 유치원이 열려있는 시간인데, 교사들은 아침 7시~오후 3시 혹은 아침 9시~오후 5시의 시간을 교대로 일하고 부모들은 자신의 직장 시간에 맞춰 맡긴다고 했다.

'조용한' 방과 '시끄러운' 방

보통 가정집 정도의 크기인 유치원은 1층에 크고 작은 방이 넷, 그리고 테라스가 있고 지하에 약간의 공간이 있었다.

현관에 잇대어진 방은 아이들이 옷을 걸어두고 갈아입는 공간으로 쓰고, 큰 방은 아이들이 모이는 곳, 맨 작은 방이 사무실, 싱크대가 놓여있어 부엌으로 쓰는 통로 옆 작은 방은 '조용한' 방이었다.

 ' 조용한' 방에서는 유아 세 명이 책상 앞에 앉아 소리 없이 작은 구슬을 그릇으로 옮기는 일에 몰두를 하고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소파가 놓여 있었다. 조용히 있고 싶을 때, 그리고 숲 속에서 돌아와 쉬고 싶을 때 아이들이 그 방을 이용한다고 했다.

반면 지하에 있는 '시끄러운' 방에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멋대로 놀 수 있도록 쿠션으로 된 큰 블록들이 있었다. '시끄러운' 방 옆에 컴퓨터가 딱 한 대 있는데 큰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오후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지하실 한쪽 벽에는 나무에 매어 그네로 쓸 밧줄들이 주렁주렁 걸려있기도 하고 교사들이 숲으로 나갈 때 입을 덧옷이며 장화, 신발, 배낭들이 있었다. 지하실 계단이 가파라서 아이들이 오르내릴 때 위험하지 않을까 했더니 벤트는 아이들이 알아서 잘 조심을 한다고 했다.

낑낑대며 혼자 방한복 챙겨 입는 세살 꼬마
 
 여기저기 돌아보는 사이 보모들과 유치원아들이 큰 방 바닥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었다. 대개 9시경에 아이들이 모여 앉아 발표도 하고 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다가 10시경부터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보모는 아이들이 돌아가며 누구나 발표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내지 않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앉아 있어도 매우 자연스러운 분위기였고, 얼마쯤 앉아서 놀이며 노래를 하다 먼저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라고 하자 절반쯤은 일어서서 옷을 입으러 갔다.
 
아 이들 키 높이의 옷걸이에 주렁주렁 걸린 옷들은 대부분 위아래가 달린 방한복이고 바깥에서 입는 전용이어서 여기저기 흙이 묻어있었다. 세 살짜리 꼬마가 낑낑대면서도 혼자서 옷을 입고 지퍼도 올리고 모자도 찾아 쓰고 장갑도 끼는 모습이 신기했다. 교사들은 옆에 있다가 잘 안 들어가는 신발을 신겨주고 끈을 매주는 정도였다.

보모들의 토론으로 갈 곳 정해
 
 현 관문 앞에는 작은 배낭들이 쌓여있었다. 아이들이 각자 지고 갈 배낭이었다. 들어보니 제법 묵직했는데 물 한 병, 점심도시락, 따뜻한 여벌옷이 들어있다고 했다. 집 마당에는 미리 나온 아이들이 모래장난이며 물장난을 하기도 하고 넘어져 있는 나무에 올라가서 놀기도 했다.
 
이윽고 교사를 따라 아이들이 배낭을 매고 줄을 지어 문밖으로 나갔다. 비가 뿌리는데도 아랑곳없었다. 17명씩 두 조로 나누어 한 조에 세 명의 교사가 배치된다고 했다. 내가 함께 한 조는 결석으로 인해 아이들이 열 세 명이어서 교사는 둘이서 따라 나섰다.
 
오늘은 가까운 사슴공원에 가는 날이었다.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면 막상 갈 곳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대개 어디를 가느냐 물어봤더니 여기저기 멀고 가까운 공원이나 바닷가, 때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간다고 했다. 멀리 갈 때는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간다는 것이었다. 갈 곳은 그날그날 보모들이 토론을 해서 정한다고 했다.

공원과 숲, 박물관이 많은 나라
 
코펜하겐은 여기저기 동네마다 공원도 많고 공원에는 나무가 많아 숲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숲 속 유치원을 운영하기에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또 덴마크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어린이를 위한 방이 따로 있고 그림 그리기, 만들기 등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길 을 걸어갈 때는 아이들이 꼭 두 명씩 손잡고 가도록 하고 건널목에서는 일단 멈춰서 차를 조심하도록 습관을 들인다고 했다. 얼마 후 사슴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일단 멈춰 서서 보모들이 아이들 숫자를 확인한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면서 저절로 배운다
 
아 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가기도 하고 땅에서 무언가를 줍기도 하고 물이 고인 곳에서 절벅거리기도 했다. 이끼가 끼어 미끄러운 나무다리를 건너가는데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걸었다. 미끄러지지 않는 튼튼한 신발이 첫 번째 중요한 장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유치원이라 하지만 그래도 무슨 커리큘럼 같은 것은 없느냐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느냐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노는 것을 통해서 저절로 배운다고 했다.
 
사실 손잡고 걸어가는 것, 차 조심 하는 것, 숲에서 뛰어다니는 것, 땅에서 무언가 줍는 것, 계절이 변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하나하나가 공부 아닌 것이 없었다.

사고는 오히려 실내에서 더 잦다
 
이 숲 속 유치원은 일주일 닷새 중 하루는 유치원에 머무는 날로 정해서 17명은 수요일 다른 17명은 금요일에 유치원에 머문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숲 속 유치원은 아예 유치원 건물도 따로 없이 매일 아침 숲 입구에서 만나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오후에 해산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서 노는데 그럴수록 아이들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혹시 아이들이 다치거나 위험했던 경우는 없었냐고 묻자, 없었다고 사고는 오히려 실내에서 더 일어나기 쉽다고 했다.
 
추운 날씨, 젖은 땅 위에서 도란도란 노는 아이들
 
이 윽고 공원 내의 오늘 가기로 정한 장소에 다다르자 아이들은 익숙한 듯 배낭을 벗어놓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올라가기도 하고 배가 고픈 아이들은 땅에 앉아서 도시락을 꺼내서 먹기도 했다.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이 아이들이 마음대로 알아서 먹는다고 했다.
 
하나 둘 도시락을 꺼내어서 먹는데 보니 아이마다 도시락 통도 제각각 다를뿐더러 싸온 내용물도 다 달랐다. 도시락 통마다 그 속에 적어도 다섯 가지 정도 다른 것이 들어있었다. 과일, 채소, 빵, 치즈, 비스킷 등.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아직 땅은 얼어있고 몹시 추운 날인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눈이 덮인 한겨울에도 이렇게 숲에서 놀았을테니 그럴 만도 했다.
 
같이 온 남자교사는 앞에 앉은 아이들과 가만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벤트는 설탕이 우리 몸에 좋은지 나쁜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12 명의 아이들이 주위 여기저기에 자연스럽게 흩어져서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땅에 눕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쓰러져 있는 큰 나뭇가지 속에 들어가기도 하며 노는데 이상하게 크게 고함을 지르거나 떠드는 아이가 없었다. 물론 웃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지만 한국 어린이들에 비하면 훨씬 조용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치원
 
그 렇게 숲 속에서 점심을 먹고, 놀다가 대개 오후 3시경에 유치원으로 돌아가는데 날이 나쁠 때는 2시경 가기도 한다고 했다. 유치원에 돌아가면 학부모들이 번갈아가며 가져오는 과일과 빵을 나누어주는데 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아주 잘 먹는다는 것이었다.
 
별로 표 나지 않게, 그러면서도 지혜와 정성이 깃든 보살핌을 받으며 숲 속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그 아이들이 나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어린이들로 보였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어린아이를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 맡기고 직장 나가는 것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는데 이 정도의 유치원이라면 아무 걱정 없이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회] "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0226174858&Section=03

 

 

덴마크는 선진적인 복지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복지국가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시장경제만으로는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 즉 최소한의 수입 보장, 그리고 질병, 고령화, 실업 문제에 대한 사회적 안정망 구축과 아울러 평등하고 질 높은 공적 서비스(가령 의료, 교육)의 제공 등의 문제에 개입하여 조직적인 힘을 행사하는 나라를 통상 복지 국가라고 정의한다.
  따 라서 복지국가란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고, 의료 서비스와 교육이 보장되는 국가를 말하는데 여기에 덧붙여서 인권이 보장되고, 민주주의 제도가 실시되어야 한다. 위의 세 요소가 얼마만큼 보장되는 가는 정치적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자선에서 노동자, 농민 조합으로
  복지국가 출현 이전의 유럽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 해결을 주로 교회에서 행하는 자선에 의지해 왔다.
  19 세기 초 이후 국가가 개입하게 되었는데,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전 유럽에서 진행된 산업화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탄생하고 임금, 실업, 주거, 의료 등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 까닭이다. (코펜하겐 시내에는 1870, 1880년대에 이 산업화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지은 열악한 상태의 노동자들의 집이 아직 남아있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즉 제도를 만들어서 해결하는 방법)과 혁명(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데, 덴마크는 농경국가에서 산업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아주 드물게 피를 흘리지 않은 나라라고 한다.
  산업화 초기에는 농민, 노동자들이 각자의 조합을 만들어서 문제에 대처를 했고 1899년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 내어 마침내 당을 만들어서 국회에 내보낸 것이 오늘날의 사회민주당이다.
가족이 아닌 개인 단위의 복지
  복지제도가 실시되는 단위에는 사회구조에 따라 가족 또는 개인이라는 두가지 단위가 있다. 덴마크는 개인 단위를 택한 나라다.
  남녀 차별 없이 거의 전 국민이 일하는 덴마크에서는 개인이 낸 세금을 기초로 해서 개인단위로 복지혜택이 돌아간다. 전 국민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복지혜택은 소득을 재분배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1933 년에 개선이 되었고 1960년에 노령 연금 제도가 도입됐다. 덴마크 복지제도의 특징은 시대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적응을 해나가는 점으로, 가령 20년 전 실업률이 높았을 때는 조기퇴직을 유도 했으나 오늘날 복지비용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이 높아지자 지금은 67세의 정년까지 일하도록 유도를 하고 있다.
  이런 성과를 이루어낸 바탕에는 농부, 노동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조합을 만들면서 형성한 강한 연대 정신, 평등정신, 협동조합 운동, 국민적 합의, 유연성 등이 있다.
무상 교육, 무상 의료…"문명의 위대한 성취"
  무 상 교육과 무상 의료서비스, 실업, 노후, 육아, 장애에 대한 보조와 제도적 뒷받침 등 삶의 각 단계마다, 고비마다 주어지는 각종 복지혜택은 덴마크인에게 인간적인 위엄을 보장해주고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 삶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덴마크의 복지제도를 두고 '문명의 위대한 성취' 라고까지 자찬하는 덴마크의 한 사회학자의 말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 기차역 앞에 세워진 자전거들. 복지의 나라인 덴마크는 자전거 천국이기도 하다.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 사회 연대 의식은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발휘된다. 상당수의 덴마크 인들은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보다 친환경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선호한다. ⓒ김영희

  이런 복지제도의 재원은 세금이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누진율을 적용하는 덴마크의 소득세는 40~60% 에 이른다. 그 위에 부가가치세가 25% 붙는다. 가히 살인적인 세금의 나라다.
  그러나 국민들은 높은 세금에 투덜거리면서도 꼬박 꼬박 정확히 세금을 낸다. 세금이 복지혜택이 되어 투명하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높은 세금에 기반한 복지, 부자에게도 좋다
  또 세금포탈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 한 이유이기도 하다. 덴마크에서는 세금포탈을 가장 큰 범죄로 여기고 만일 세금포탈을 하면 어느 경로로든 확인이 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흔 히 다른 나라에서 있을 법한 부자들이나 기업 경영인들의 조세 저항이 덴마크에서는 없는데 이는 사회적인 불안 비용을 따져보면 높은 비율의 세금을 기반으로 이루어 낸 복지제도가 부자들에게도 이익이 되고 경영인들에게도 경쟁력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상의료니까 서비스가 부실할 거라고?…천만에!
  해외에서 근무하고 귀국한 한 덴마크인은 해외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낼 때는 속이 상했으나 막상 귀국을 해서 모든 것이 보장되니 세금을 낸 보람이 있다는 말을 했다.
  또 덴마크 회사에서 근무하는 우리 교민 한 분은 월급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떼어내니 처음에는 기가 막혔으나, 아이의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몸이 아파서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받은 의료서비스가 감동적이어서 그 다음부터는 세금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자기 앞가림만 하려들면, 복지는 불가능하다"
  최근에도 덴마크에서는 세율로 논의가 분분하다는 소식을 전하는 한 지인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 개인적으로는 세금을 낮추면 좋겠다고 생각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세금은 더 내도 좋으니, '복지국가'를 유지 하자는 것이 중론이랍니다.
  내가 68% 세금에서 어떻게 더 내려 하느냐고 면박을 주면, 남편은 '약자를 위해서'라며 아주 열변입니다. 모든 덴마크 국민이 자기 앞만 가리려 한다면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곳 실정이 이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금이 너무 높다, 내기 싫다'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자기들 개개인이 복지국가를 지탱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답니다.
  이곳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덴마크 복지의 원천이라고 자부합니다. 자기들이 없다면, 복지가 안 된다고 하는 그 말에 저도 동감을 합니다.
  덴마크의 보통 사람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변호사, 의사, 검사 등 사회의 모든 엘리트들을 '공부시켰다'고들 자부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상당한 행복감과 함께 남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앞서 게재된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와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등 두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일부 독자들은 편집자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우리와 너무 다르다. 지구 상에 이런 사회가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독자들은 "덴마크가 연재물에 소개된 것과 같은 복지 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와 전혀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이런 모델이 실현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서열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를 꼽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서열 의식'이 깨지지 않는 한, '평등 의식'에 기반한 복지 사회로의 이행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그리고 이런 이행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하 지만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필자인 김영희 씨는 "덴마크 역시 1950년대까지는 우리처럼 서열 의식이 강했다"라고 설명한다. 덴마크라고해서 원래부터 '평등 의식'이 강했던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영희 씨는 1968년 학생혁명이 분기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소규모 학생 시위가 세계를 휩쓴 신좌파 열기로 번진 1968년 5월 혁명이 덴마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김영희 씨는 덴마크에 '평등 의식'이 급격히 확산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설명했다. 불과 한 세대만에 사회 전체가 환골탈태한 셈이다.
이런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보다 평등하고, 살기 좋은 사회로 거듭나는 일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이다. 다음은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14회분이다. <편집자>
  자녀가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는 것은 한국부모나 덴마크 부모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한국 부모가 아이들의 교육에 그렇게 열성적인 것은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이라고 말 할 때의 '좋은'이라는 말에는 은연중 어떤 서열의식이 뒤에 숨어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이 서열이라는 것은 숨 쉬는 공기처럼이나 어디에나 뻗어있다.
  가 정에도 서열이 있고 학교 내에서도 교장 평교사 학생이라는 서열이 있고 학생들 사이에도 등수라는 서열이 존재한다. 고등학교가 평준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강남학교와 강북학교 사이에 서열이 있고 대학 간에 있는 서열은 말할 것도 없다.
  직장, 직업에도 서열이 있어서 이는 바로 사회적 신분과 보수로 이어지는데 서열이 높은 쪽일수록, 즉 상위권일수록 혜택을 많이 받고 안락한 삶을 살게 된다.
  사정이 이러니 부모들은 아이를 상위권에 밀어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상위권, 하위권으로 나누는 서열의식, 그리고 불평등이 있는 한, 초인적인 학습시간과 과외열풍이 사라질 수 없다.

▲ '방과 후 클럽' 활동으로 토끼를 돌보는 덴마크 학생. 아이들이 경쟁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랄 수 있게 된 계기는 '1968년 학생 혁명'이었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의 이행은 거저 이뤄진 게 아니었던 셈이다. ⓒ김영희

  부 모가 다 같이 일하는 덴마크 가정에서 부부 사이는 물론 부모와 아이들과의 관계도 상당히 대등한 편이다. 아이들도 인격체로 간주하여 항상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존중한다, 말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이가 매사에 스스로의 의견을 말하도록 격려를 한다.
  학 교에서도 교장은 교사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행정적인 업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대표쯤으로 인식이 된다. 또 교사는 학생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 한다. 학생들은 우열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능력과 소질이 다른 존재로 파악된다. 학교간의 서열은 거의 없고 직업에 따른 사회적 신분과 보수의 차이도 심하지 않다.
  이처럼 서열이 거의 없는 평등한 사회이니 상위권에 진입하기 위해 모든 희생을 할 필요도 없고 덴마크 부모들은 아이가 방과 후 학교나 클럽에서 마음껏 놀아도 걱정이 없는 것이다.
  덴마크 부모의 바람은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그 분야로 나가 직장을 얻는 것' 이라고 한다. 즉 하고 싶은 일, 능력에 맞는 일을 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덴마크에도 1950년대 까지는 우리와 같은 서열의식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8년 학생혁명을 기점으로 1970년대부터 평등의식이 급격히 확산돼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인간 능력의 다름을 인정하고. 개성을 인정하여 동등하게 여기는 평등정신이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필자 이메일 : kumbikumbi2@yahoo.co.kr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0219160113&Section=03

[사회]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한국에선 '좋은 직업'이 따로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좋은 대학에 그렇게도 목을 매는 것일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에서 상위권에 들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초인적으로 공부시키는 것도 결국 '좋은 대학'이라는 게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런 '좋은 대학'이 '좋은 직업', '좋은 보수', '더 우월한 사회적 지위'로 마치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덴마크는 한국과 무엇이 다르기에 아이들이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방과 후 학교나 클럽에서 실컷 놀면서 자랄 수 있는 걸까. 필자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태도'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좋은 직업' 있느냐"는 질문에 '교과서적인' 대답…"과연 진심일까?"

▲ 덴마크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 대한 부담 없이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랄 수 있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의 구분이 없고, '직업에 따른 소득 격차'가 거의 없다는 점이 주요 이유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이 가장 좋은 직업이 되는 셈이니, 무리한 입시 경쟁을 치를 필요가 없다. ⓒ김영희

  "덴마크 사회에도 이른바 '좋은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이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주변에 있는 덴마크 사람들에게 종종 던지곤 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의 의사처럼 다른 직업보다 '더 많은 보수' 혹은 '더 많은 존경'을 받는 직업이 따로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렇게 묻는 필자에게 덴마크 사람들은 번번히 '교과서적인' 대답을 하곤 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의사에 못지 않게 벽돌을 잘 쌓는 전문가를 존경한다"라거나, "불행한 의사보다 행복한 청소부가 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렇게 믿는 듯 했다. 하지만 필자는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질문을 이어갔다.
페인트공과 법률가의 실수입은 비슷하다
  "그렇지만 우선 벽돌공과 의사는 보수가 다르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 소득의 많고 적음에 따라 누진과세를 하기 때문에 보수가 많건 적건 결국 실수입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다는 대답이다.
  따 라서 벽돌공이나 의사나 생활수준이 비슷하고, 페인트공이나 법률가나 실수입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했다. (덴마크의 소득세는 49~60% 다. 조세저항이 생길 법도 한데. 그 혜택이 모두 돌아오니까 충분히 세금을 낼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또 직업학교만 나와서 사회에 진출하면 대학교 다니는 기간만큼 더 빨리 직장생활을 하게 되어서 경제적으로는 대졸자나 별로 차이가 없다고 했다. 전문 기술자에 대한 보수가 높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더 안정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직함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른다"…"'사회적 신분', 역시 차이 없다"
  " 그렇다면 소득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해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직업학교 나온 사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다르지 않은가, 특정 직업을 더 대우해 주지 않는가, 요컨대 사회적인 신분이 다르지 않은가"라고 다시 물었다. 역시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 직업에 따른 사회적 신분 차이는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덴마크 사회에서는 거의 누구나 이름으로 (직함이 아니라) 부른다. 직장이 아닌 동네 여가 클럽에서는 누구나 동등하게 어울린다. 벽돌공이나 사장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설명이다.
  대학을 나와서 특별히 학식이 많다면 존경을 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직업에 따른 차별이 거의 없다고 했다.
'관리자 되기'를 꺼리는 사회, "전문 기술자가 최고다"
  '대학을 나왔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가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직 장에서도 기술자는 자기 기술 분야에서만 일하고 싶어 해서 매니저(관리자)가 될 기회가 있어도 피한다고 했다. 그만큼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가령 우체부는 빠르고 정확하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한 덴마크 교민은 "남편이 사장인데 직원보다 일찍 출근해서 미리 일 할 준비를 해놓는다. 기술자는 자기 할 일만 한다. 기술자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높다"라고 말했다.
짐꾼 아들이 물려받지 않아서, 회사를 팔아버린 사장 아버지

▲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풍경. '좋은 직업'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크고 비싼 차'를 타고 다녀야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생각도 없다. ⓒ김영희

  이 어 그는 "근처에 큰 회사 사장이 살았는데 그 아들은 일찍부터 남의 회사에서 트럭으로 물건 나르는 사람이 됐다.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지 않아서 그 아버지는 회사를 결국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아들은 여전히 물건 나르는 사람으로 행복하게 지낸다. 15살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얼마 전에 일한 지 25주년이 됐다. 이 날을 아주 자랑스럽게 기념했다"라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또 다른 교민도 "이곳에서는 벽돌공 같은 기술자들이 돈도 많이 벌고 결코 사회적으로 무시당하지 않는다. 의사나 벽돌공이나 사는 수준은 비슷하다.'고 했다.
아이의 진로에 간섭하지 않는 부모들
  이 처럼 상위권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보수, 더 안락한 삶으로 이어지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사회, 그래서 사람 사이에 서열이 없는 사회, 직업에 따른 생활 수준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거의 없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이니 우리처럼 죽자 사자 매달려서 꼭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9학년에서 직업학교와 인문 고등학교로 갈릴 때 담임이 파악한대로 아이의 적성에 맞게, 그리고 본인이 희망하는 대로 보내면 그만일 뿐 과외를 해서까지 무리하게 공부를 시킬 필요는 없는 셈이다.
  덴 마크 가정에서는 어려서 아이에게 '다음에 뭐가 되어라' 식의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데 아이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의 바람은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그 분야로 나가 직장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한 부모는 '부모가 학비나 등록금을 대는 것도 아니고, (덴마크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다.) 아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의 진로에 대해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다.
덴마크 부모들이 아이를 입시 경쟁에 내몰지 않는 이유?

▲ 어느 덴마크 거리에 세워져 있는 우체부의 자전거. 한국과 달리 덴마크에선 '직업 간 소득 차이'가 거의 없다. 그리고 관리자가 되기보다 기술자가 되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하건 얼마나 전문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자부심을 느낀다. 이를테면 우체부의 경우, 빠르고 정확하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는다 ⓒ김영희

  시험으로 우열이 가려지고 등수에 따라 상위권 하위권으로 나뉘는 우리 식의 교육에서는 아이들이 공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대학 들어가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기 십상이다.
  그 러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른 능력이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덴마크의 교육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과 팀이 되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교육의 목표 자체가 우리와 다른 셈이다. 입시가 과열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개의 덴마크 사람들의 생각을 요약하면 이런 식이다.
"더 좋은 학교? 물론 그런 곳이 있다. 그런데, 글쎄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더 좋은 직업? 교육을 많이 받아서 박사나 의사가 되면 약간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벽돌을 잘 쌓는 기술자를 이들 못지 않게 존경한다.
  그래도 직업 간 수입 차이가 있을텐데? 교육을 많이 받을 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하지만 덴마크 세금제도는 돈을 많이 벌면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돼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
  더 잘사는 동네, 못사는 동네의 차이도 없나?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못사는 동네 사람들이 잘사는 동네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만족하며 산다."
  최근에 실시한 각국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덴마크가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사회 구성원이 제 위치에서 만족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3월 20일 금요일

[좋은글] 박정희 쿠데타 받아들인 케네디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173

박정희 쿠데타 받아들인 케네디
[오바마 시대와 한국](31)오바마를 거울 삼아 보는 한국사회

2009년 03월 19일 (목) 12:14:53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미국의 우산’ 아래서 보낸 64 년

미국은 한국이 함께 가야 하는 나라이다. 무엇보다도 2만 명이 넘는 그 나라 군대가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중국 다음 가는 한국 상품 수입국이다. 그리고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 리나라 국민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도 개인의 세계관,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평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것이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이들은 대체로 ‘미국은 북한의 침략을 막아주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는 최대의 동맹’인 동시에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앞서가는 시장경제를 배워야 하는 선진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통째로 그른 것은 아니겠지만, 이 글에서 시종일관 강조했듯이 미국을 그렇게만 본다면 한국사회의 발전은 물론이고 개인의 창조적 사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하면 무엇이나 최고’

내 또래의 사람들은 ‘미국 하면 무엇이나 최고’라고 여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6월 25일에서 며칠이 지난 무더운 여름날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마을 넓은 터에 모인 동네 어른들이 “괴뢰군이 남침을 해서 서울을 점령한 뒤 남으로 밀고 내려온다”면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피란 떠날 걱정을 하던 날이었다. 맑은 하늘에 굉음이 울리더니, ‘무스탕 비행기’라고 부르던 거무튀튀한 물체가 날아가면서 하얀 ‘삐라’를 쏟아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엔군이 곧 참전해서 ‘괴뢰군’을 무찌르겠으니 국민들은 안심하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때로는 질이 좋은 종이에 인쇄한 그 삐라들은 산에 들에 널려 있어서 아이들은 그것을 주워서 딱지치기를 하거나 종이비행기를 날리곤 했다.

경부선 열차가 잠깐 머무는 충청남도의 소읍인 나의 고향으로 북한군이 하루 이틀이면 들이닥치리라던 날 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피란길에 올랐다. 누이동생을 등에 업은 어머니를 따라 만 여섯 살 배기가 수십리 길을 걸어가면서 몇 발자국도 못 가서 쉬면서 짜증을 부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 형제들은 부산으로 간다면서 남쪽으로 떠난 뒤 소식이 없고, 심심산골의 친척 집에서 보내는 피란살이는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퉁퉁 불어터진 보리밥 한 덩이로 아침과 저녁 끼니를 때우고 점심은 굶는 것이 예사였다. 코흘리개들은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설익은 땡감을 따서 먹거나 송화가루로 배를 채웠다가 항문이 막혀 눈이 뒤집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두어 달 남짓이 지나서 국군이 북진을 시작하고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미군이 9월 28일 인천에 상륙한 뒤 한참만에 ‘마침내’ 우리 마을에 미국사람들이 찾아왔다. 마을을 지나는 경부국도의 다리가 폭격을 당해 허물어진 것을 복구하러 온 공병부대였던 것 같다. 그들은 생김새가 참으로 신기했다. 얼굴이 우유처럼 하얗고 눈은 퍼렇고 코는 우뚝 솟은 백인들 사이에 석탄처럼 새까맣고 아이들 눈에는 다른 별에서 온듯이 보이는 흑인들이 더러 섞여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리 언저리에서 진을 치고 살았다. 미군들이 작업을 하다가 휴식시간이 되면 요즘말로 ‘이벤트’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몇 사람이 높다란 트럭에 올라가서 초콜릿과 과자를 땅으로 뿌리면 아이들은 결사적으로 몸을 던져 그것들을 덮쳤다. 운 좋게 그 별난 먹을거리를 손에 넣은 아이들은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다른 어린이들이 빼앗기라도 할까봐 흙가루가 묻은 채로 초콜릿이나 비스킷을 잽싸게 입에 넣었다. 미군 병사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어 죽겠다는듯이 박장대소를 했다.

‘고마운 미국’의 가루우유

이듬해에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간 우리에게 ‘고마운 미국’이 손을 내밀었다. 미군 전투기들이 무차별 폭격을 해서 기둥만 앙상하게 남은 ‘교실’에서 차디찬 마루바닥에 앉아 몽당연필 심에 침을 묻혀가면서 공부를 하던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면 먹을 것이 없어서 양지에 모여 해바라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비참한 곳에 어느 날부터 미국의 원조물자인 ‘가루우유’가 배급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성조기와 한국의 태극기가 악수하는 그림이 선명하게 찍힌 그 우유 자루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최대의 ‘영양 공급원’이었다. 사람들은 허기지면 허겁지겁 그 우유를 가루 채 먹고, 좀 느긋해지면 쪄서 먹기도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들은 것이지만 그 우유가 ‘사료용’ 이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굶주린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양식‘이었다.

미국 하면 착하고 잘 사는 사람들의 나라라고만 여기고 있던 아이들에게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가루우유가 선을 보인 시기와 엇비슷했다. 동네 어른들은 미군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에 처녀들이나 부녀자들이 혼자 다니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그런 일보다 더 희한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우리 동네의 한 집을 가리키면서 “저 집 딸 양갈보로 갔단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집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손가락질을 하던 아이들도 그런 집 딸들이 화사하게 치장을 하고 ‘미제’ 옷이며 신발이며 치약, 그리고 아이들이 그렇게도 먹고싶어 하던 ‘씨레이션’(미군의 야전 식품)을 한 보따리 싸들고 귀향하면 부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것이 지금도 미군부대 주변에서 팍팍하게 살고 있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슬픈 역사’의 시작이다. 그 이래 6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한국 여자들이 가난을 벗어나려고 미군을 상대로 인신을 매매했으며, 더러는 사랑이 싹터서 결혼하고 미국으로 갔지만 문화와 생활관습의 충돌 때문에 버림을 받거나 이혼을 했을까? 나는 1990년대 초에 미국 북동부의 시애틀에서 가까운 타코마(유명한 보잉비행기회사와 큰 공군기지가 있는 곳)에 그런 여성들이 2만여 명이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 대다수는 미국시민이 되었지만 남편과 헤어져서 어렵게 산다는 것이었다. 미식축구팀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슈퍼볼’에서 두 번이나 우승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하인즈 워드는 미군 출신과 이혼한 한국 여성이 눈물겨운 노력으로 일궈낸 보기 드문 성공사례일 뿐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아이 앰 어 보이’로 시작해서 ‘ABC 노래’를 지나 더듬더듬 ‘미국말’을 배워나가던 때 영어 단어 하나라도 남보다 빨리 외우려고 얼마나 기를 썼던가? 요즈음은 유아부터 어른까지를 ‘소비자’로 삼는 거대한 영어 사교육시장이 불황에도 고래처럼 돈을 빨아들이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미국을 고마워하고 동경하던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한 것은 1960년의 4월혁명 때였다.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어린 시절에 그렇게도 존경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아주 나쁜 독재자임을 중학교 2학년 무렵에 깨닫고서는 증오하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서울 혜화동 로터리와 담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4월 19일 아침 9시반께, 물리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야, 어제 고려대 학생들이 깡패들한테 쇠뭉치로 얻어맞았는데 너희들 어떻게 생각하니?”라면서 은근히 분노를 자극하고 있던 참에 대학로 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교생이 순식간에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누군가가 무명커튼을 찢어서 만든 천자락에 ‘민주주의 사수하자’라는 먹글씨를 써 들고 앞장을 서자 모두 교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서울대 문리대와 의과대 앞을 지나서 종로5가 네거리로 가니 건물 창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격려의 손뼉을 치고 있었다. 길가의 사람들은 우리 고등학생들을 향해 미친듯이 손을 흔들어 댔다.

조금씩 이상해진 미국

우리는 정신없이 서울시청 광장을 지나서 중앙청(지금의 경복궁)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경무대(현재 청와대) 앞 2백여 미터 지점까지 갔다. 앞에는 동국대 학생 수백명이 도로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경무대 입구에는 배관용 시멘트통을 쌓아놓고 경찰관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우리는 납작 엎드린 채 겁에 질려서 앞을 보고 있었다. 오후 1시쯤이던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총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뛰어’ 하는 선생님의 고함에 따라 우리는 삼일당(진명여고 강당) 옆골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그 고등학교 학생 열두어 명이 총을 맞아 평생 불구로 지내야 했다.

4월 26일은 참으로 기쁜 날이었다.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면서 이승만이 물러났기 때문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주한 미국대사인 월터 매카니기를 통해 이승만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이 빨리도 퍼졌다. ‘아니 그동안 독재자를 그렇게도 감싸던 미국이 웬 일이지?’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해관계가 걸린 나라들에서 미국이 독재자를 비호하다가도 세 불리해지면 가차없이 버린다는 것을 그때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더 이상한 일은 1961년 5월 16일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육군소장 박정희의 주동으로 김종필을 비롯한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한강을 건너 와서 4월혁명의 결과로 세워진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저질렀는데 미국의 케네디 행정부가 아리송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4월혁명 뒤에 급진적인 대학생들은 남북통일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쳤는가 하면, 기성세대 중에서도 혁신세력이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자 보수적인 정당들과 언론이 ‘안보 위기’를 요란하게 강조했다. 게다가 ‘무능한 장면 정부’라는 비판이 옛날의 동지인 민주당 구파에서 거의 날마다 쏟아져 나왔다.

1960년 7·29 총선을 통해 들어선 장면 정부 역시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일본과 ‘새롭고 적극적인 교섭’을 시도하지만 1961년 5·16 쿠데타에 의해 중단되었다. 미국은 박정희가 해방 전에는 친일 활동을 하고 해방 후에는 공산주의 활동을 했지만 이승만 정부가 공산주의자들을 제거하는 데 협력했으며 그의 쿠데타 동지들 가운데 공산주의자나 반미주의자는 없다는 점을 파악하고 쿠데타를 승인하며 한일 회담을 서두르도록 촉구했다 (<오마이뉴스>, 2005년 1월 21일, ‘미국의 오만· 일본의 무례에 앞서 한국의 비굴함을 먼저 반성해야’, 이재봉 기자의 기사에서).

*이재봉 기자는 한국 정부가 40여년만에 공개한 ‘한일 회담 문서’와 미국 의 한국 관련 외교 문서들을 검색한 결과를 바탕으로 위의 기사를 썼다고 밝혔다.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케네디 대통령은 박정희의 ‘좌익 전력’을 의심하면서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다가 며칠 뒤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만약 그때 케네디가 박정희 군대가 주한미군사령관의 승인 없이 이동한 것을 문제 삼았다면 쿠데타는 불발로 끝났을 것이다. 이래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비명횡사하기까지 18년 5개월의 기나긴 독재가 시작된다.

‘광주’를 버리고 전두환을 택하다

1980년 5월에 미국은 또 ‘이상한 일’을 저지른다. 박정희의 후계자를 자칭하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가 ‘서울의 봄’을 군화발로 억누르고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인사들과 청년들을 체포하자 광주에서 전남대 학생들이 18일 오전에 항의시위를 벌인다. 그것이 시민항쟁으로 커지고 전두환 일파가 광주를 무장 공격하기 시작한다. 공포 속에서도 평화롭게 며칠을 보내던 시민들은 ‘미국이 곧 항공모함을 보내서 우리를 구해 줄 것’이라는 소문을 믿고 애타게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미국은 끝내 광주를 저버리고 전두환을 택했다. ‘인권대통령’을 자임하던 지미 카터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퇴임 뒤에 그가 세계 평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은 별개 문제이다. 카터의 후임인 로널드 레이건이 1981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전두환을 미국으로 초청해서 가까운 친구처럼 등을 두드렸다는 사실은 이 글의 앞 부분에 쓴 바 있다.


박정희의 후계자들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물론이고 ‘문민정부’의 김영삼, ‘국민의정부’의 김대중, ‘참여정부’의 노무현도 미국의 위세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미국의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지배세력과 주한미군에 당당히 맞서서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용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사사건건 대립했다가는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우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도처에서 미국이 비호하던 독재자나 통치자들이 등을 돌릴 때 어떻게 ‘처리’했다는 사실을 그들이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한미군이 터무니없이 주둔비를 요구해도, 환경을 오염시켜도, 한국인들에게 잔인한 범죄행위를 해도,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요청해도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악화되는 것도 큰 부담이지만 미국 때문에 느끼는 해묵은 심리적 불안 상태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오바마의 ‘인맥’을 찾아라?

2008년 11월 6일 오전 2시(한국시각)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우리나라에서, 특히 정부와 재계에서 ‘오바마 인맥을 찾아라’가 지상과제처럼 떠올랐다. 미국의 우산 아래서 60 년 가까이나 권력과 부를 누려온 보수세력에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오바마 당선자와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미국시민권을 가진 우리나라 동포로서 오바마의 승리에 기여한 사람은 누구인지, 미국 정·재계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할 ‘친한인사’는 누구인지를 알아내서 빨리 선을 대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인맥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끈이나 핏줄 같은 것일까? 사랑이나 우정으로 맺어진 관계일까? 아니면 이익을 좇아서 함께 움직이는 개인들의 유대일까? 이 모두가 정도 차이는 있어도 인맥에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를 찍은 미국인들의 투표용지(실제로는 전자투표지만)에서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리도 조급하게 인맥 찾기에 나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조건반사’라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25일에 취임한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라는 선물을 부시 2세 대통령에게 주고 곧바로 워싱턴에 가서 백년지기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였는데, 부시와는 전혀 다른 성장배경과 정치철학을 가진 오바마의 인맥을 어떻게 빨리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가만히 있는데, 참모들이 그랬을까? 대통령 취임 한 해가 지난 2009년 초봄까지 이명박 진영에서 오바마 인맥을 얼마나 찾아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자세로는 오바마 대통령이나 미국 행정부 또는 재계의 중요 인물들과 단시일에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오바마가 매케인을 누르리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 두어달 전부터 미국의 여러 언론매체에 나오던 무렵에, 막판까지 ‘부시와의 우정’을 강조하던 이명박 진영은 다급해진 것 같다. 그 조급증이 오바마의 당선 확정 직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 신문 방송 등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인맥’을 강조하면서 혹시나 나라의 어느 구석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오바마의 옛 친구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외교 실무라인은 아예 묵묵부답이고 그나마 국제적 인맥이 있다는 국회의원 몇 명이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여하여 오바마 후보자와 악수하며 찍은 사진 한 장이 한국과 미국 대통령 당선자 사이에 형성된 스킨십의 전부이다.
하지만 내년 초 미 대통령 취임식까지 국내 인맥을 뒤져봐야 나올 리가 만무하다. 오바마가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 남짓밖에 안 되는 신인이고 워싱턴의 중앙무대보다는 시카고 외곽에서 빈민운동으로 자신의 입지를 세워 백악관을 접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류 인사들만 접촉을 시도했던 한국정부나 정치권이 유색인종이자 비주류 정치인인 오바마에게 그동안 관심이나 두었을지 의문이다. 투자가 없으니 과실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일보> 2008년 11월 13일자,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의 칼럼, ‘오바마의 인맥 찾 기’에서) .

오바마 인맥 찾기에 몰두하기는 야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아무개가 그와 선이 닿는다느니, 어떤 한국 교민이 오바마 선거 캠프에서 중요한 일을 했다느니 하면서 나라 안팎 뒤지기에 나섰던 것이다. 한국에서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공천을 받으려고 인맥을 찾아서 효과를 본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접근하겠다는 뜻이었을까?

해 답은 먼 데 있지 않다. 정부와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인맥을 통해 오바마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말고, 미국 대통령을 전보다 훨씬 더 자주적인 자세로 대하면서 정책과 이념 양면에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가장 좋은 인맥을 일구어 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글쓴이 / 김종철

-전 동아일보사 기자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전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
-현 재능대학교 초빙교수
- 평 론으로 <상업주의소설론> 등, 저서로 <저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1992)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1995), 역서로 <말콤 엑스>(공역,1978) <산업혁명사><프랑스혁명사>(1982) <인도의 발견> 등

2009년 3월 19일 목요일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우주 속 지구 사진

 

▲ 휴대용 소형카메라로 찍은 지구의 모습(Barcroft Media)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지구는 어떤모습?

청소년 4명이 휴대용 소형 카메라(일명 ‘똑딱이 카메라’)로 지구를 촬영하는 실험에 성공해 눈길을 끌고 있다.

최첨단 기상 관측 시스템과 고성능 카메라 없이 멋진 우주와 지구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성공한 이들은 놀랍게도 영국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스페인 출신 학생들.

이들은 카메라에 전자센서를 부착한 뒤 고무풍선을 이용해 우주로 내보내는 방식을 이용했으며 이후 센서를 이용해 카메라의 위치를 파악하고 지구의 모습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실험에 참가한 한 학생은 “이번 실험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특히 우리가 직접 손으로 만든 장치를 우주로 보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어 “우리가 실험에 이용한 풍선은 1500g에 불과한 헬륨 풍선으로 1.5kg의 카메라와 센서 장치들을 무사히 우주로 보낼 수 있게 도와줬다.”며 “우리는 많은 기상 변화에 대비해야 했고 심지어는 상공을 지나는 여객기의 시간도 체크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만든 풍선을 이용해 만든 ‘핸드메이드’ 우주관측기기는 점차 상승속도가 빨라지면서 최고 속도로 분당 270m를 날아 우주에 도착했으며 학생들은 구글 어스 프로그램과 무선 조종기를 이용해 풍선과 카메라의 위치를 끊임없이 체크했다.

한편 담당교사 한명과 함께한 이들 청소년들의 실험은 미국 와이오밍 대학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 실험에 이용된 카메라(Barcroft Media)

사진=Barcroft Media

2009년 3월 17일 화요일

Love 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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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6일 월요일

집에서 쓰는 세정제, 불임 원인된다

http://kr.blog.yahoo.com/health_blog/9456?c=H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세정제가 불임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집 수리나 데코레이션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 성분 역시 임신을 방해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매일 가정에서 사용하는 제품 속 화학 성분이 우리 체내에 축적되면서 자궁내막증이나 호르몬 불균형과 같은 증세를 가져오게 된다. 이 때문에 불임 또는 유산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

주의해야 할 가정 내 화학성분:

  • 러그나 소파 커버 등 실내장식품 세정제
  • 가구 광택제
  • 다용도 세정제
  • 해충 스프레이
  • 화장실 청소용 세제
  • 실내 탈취제

미 환경보호국은 "대부분 집을 오염의 안전지대로 여기는데, 다수의 가정에서 야외보다 3~5배 정도 더 많은 오염물질이 발견된 바 있다"고 경고했다.

위 목록의 세정제나 클린져류를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창문과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화학성분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강한 냄새를 풍기는 세제류는 사용하지 말고, 페인트칠이나 집 수리는 임신을 계획하기 최소 3개월 전에 마치는 것이 좋다.

출처: How Household Cleaners Affect Fertility
http://shine.yahoo.com/channel/health/user-post-how-household-cleaners-affect-fertility-426596/

2009년 3월 12일 목요일

EW 선정 최고의 책 top25

미국 EW(entertainment weekly)에서

지난 25년간 출판되었던 책 중에서

최고의 책 100권을 선정했네요.

그 중에 1위부터 25위를 소개합니다.

아는 책도 있고, 번역된 책도 있지만

모르는 책도 있어 중간중간에 여백의 미를 느낄 실 것 같네요.

이 포스트를 통해

다시 한 번 컴퓨터 모니터를 잠시 꺼두고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어떤지요~^^

25위 부터 시작입니다.

25. THE JOY LUCK CLUB,

Amy Tan (1989)

중국인의 의식을 가진 어머니세대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식 교육을 받은 딸세대간의 세대차가

리얼하게

묘사되었던 소설 그리고

영화로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조이럭 클럽이 25위

24. LONESOME DOVE,

Larry McMurtry (1985)

23. THE GHOST ROAD,

Pat Barker (1996)

22. THE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

Junot Diaz (2007)

21. ON WRITING,

Stephen King (2000)

우리나라에서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지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 글쓰기는 창조적인 잠이다. 글쓰기에서든 잠에서든 육체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낮 동안의 논리적이고 따분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정신과 육체가 일정량의 잠을 자듯이 깨어있는 정신도 훈련을 통하여 창조적인 잠을 자면서 생생한 상상의 백일몽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훌륭한 소설이다. "

-스티븐 킹-

20. BRIDGET JONES'S DIARY,

Helen Fielding (1998)

영화화 되어 더욱 유명해지고

많이 읽혀진 책

사랑스런 브리짓 존스의 속마음을 통해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움을 주는지

다시 느끼게 한 소설..~~^^

19. ON BEAUTY,

Zadie Smith (2005)

18. RABBIT AT REST

John Updike (1990)

우리나라에서는 달려나 토끼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죠.

69,70년대 미국의 남루한 뒷골목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 책.

17. LOVE IN THE TIME OF CHOLERA,

Gabriel Garc Marquez (1988)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남미를 대표하는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노벨문학상 수상 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로, 19세기 말 콜롬비아 카리브해의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세월의 흐름과 죽음, 질병을 뛰어넘는 한 여자와 두 남자 간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미국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대형서점에서 매년 발렌타인데이 때마다『닥터 지바고』『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함께 추천목록에 오르는 유명한 작품으로, 영화 <세렌디피티>에서는 두 주인공의 인연을 끈질기게 엮어주는 책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어판을 중역한 작품이 출간된 적이 있으나,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스페인에서 직접 번역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

한마디로 '사랑' 그 자체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다. 

16. THE HANDMAID'S TALE,

Margaret Atwood (1986)

"시녀이야기"

성 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파헤친 섬뜩한 미래 예언서『시녀 이야기』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수개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면서 애트우드를 일약 화제 작가로 급부상시켰다.

발 표 당시 이 소설은 여성을 오직 자궁이라는 생식 기관을 가진 도구로만 본다는 설정 때문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으며, 출간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에 와서는 성과 가부장적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인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15. A HEARTBREAKING WORK OF STAGGERING GENIUS,

Dave Eggers (2000)

14. BLACK WATER

Joyce Carol Oates (1992)

13. WATCHMEN

Alan Moore and Dave Gibbons (1986~87)

" 왓치맨"

1988 년 팬 투표에 의해 수여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SF상인 휴고상을 수상했고, 타임지 선정 ‘1923년 이후 발간된 100대 소설 베스트’에 포함된 유일한 그래픽 노블이자, 그래픽 노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코믹스계의 ‘시민케인’이라 불리며 최고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작품인 『왓치맨』은 1980년대 미국 그래픽 노블의 흐름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한 작가 앨런 무어의 대표작이다. 코믹이라는 장르의 태생적 편견을 깨부수는 현란한 언어유희와 심오한 철학, 그리고 어려운 텍스트에 반비례하는 극한의 재미가 압도적 카리스마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줄 것이다. 

12. BLINDNESS

José Saramago (1998)

눈먼자들의 도시로 번역되어

계속 언급되고 있는 소설.

11. INTO THIN AIR

Jon Krakauer (1997)

"희박한 공기 속으로"

1996 년,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네 팀의 등반대에서 12명의 산악인들이 한꺼번에 조난당하여 목숨을 잃은 사고를 그리고 있다. 등반대의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던 논픽션 작가 존 크라카우어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사실에 다른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더해, 당시의 상황을 면밀하고도 정직하게 서술한다. 또한 이 책은 등반대의 조난기에만 머물지 않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과정 전체, 그리고 에베레스트 등반관 관련된 모든 사람들, 에베레스트 등반의 전역사를 망라하고 있다.

미국에서 산악 문학의 명저로 꼽히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해 왔으며 로버트 마르코비치 감독이 스크린에 옮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춥고 희박한 공기 속에서 벌어진 열정과 비탄, 에베레스트라는 자연의 힘에 도전했다가 비극을 맞은 인간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위험과 욕망을 한데 안은 산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0. THE WIND-UP BIRD CHRONICLE

Haruki Murakami (1997)

"태엽감는 새"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가 10위를 차지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작가라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었다.

9. COLD MOUNTAIN

Charles Frazier (1997)

"콜드마운틴의 사랑  "

현 대판《전쟁과 평화》라는 평가와 <전미국 도서대상>을 수상한《콜드 마운틴의 사랑》은 남북전쟁의 막바지에 사랑하는 연인에게로 돌아가는 탈주병 인만과 그를 기다리는 아다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 이야로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소유의 무익함을 그린 대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황폐화된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소설 속 인물들의 처절한 초상과 슬픔과 연민의 순간들을 작가 특유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너무도 진실되게 펼쳐 내고 있다.

8. SELECTED STORIES

Alice Munro (1996)

7. MAUS

Art Spiegelman (1986/1991)

"쥐"

유태인을 쥐

독일인을 고양이

미국인을 개로 묘사하여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유태인의 역사를 정말 리얼하게 그린 화제의 만화

"쥐"

7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만화를 그린 이

그 시절을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이죠

6. MYSTIC RIVER

Dennis Lehane (2001)

"미스틱 리버"

한 어린 소녀가 죽었다.

아버지는 복수를 꿈꾸게 되었고

비극은 계속 퍼져나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됐었지만

그러나 소설이 더 풍성한 느낌을 안겨줄 것이다.

5. AMERICAN PASTORAL

Philip Roth (1997)


4. THE LIARS' CLUB

Mary Karr (1995)



3. BELOVED

Toni Morrison (1987)

2006년 뉴욕타임즈 선정

최고의 책으로 뽑혔던 토니 모리슨의

"빌러브드"가 3위에 올랐다.

노예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인간은 참으로 잔인할 수 있으며,
그것은 세월이 흐른다 하여서, 이제는 다 지나간 옛일에 불과하다고 하여서,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는 없음을
"등짝에 벚나무처럼 가지를 뻗은 피 묻은 채찍의 흔적"을 바라보며
느껴야만 할 것이다.


2.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J.K. Rowling (2000)

2위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전설로 남을

"해리포터"시리즈 중 4편인 해리포터와 불의 잔이 뽑혔네요

1. THE ROAD

Cormac McCarthy (2006)

대망의 1위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된

코맥 맥카시의 "로드"입니다.

2007년 퓰리처상 수상,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 1위,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스티븐 킹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 모두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수식하는 경력들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 국내에 먼저 알려진 소설가 코맥 매카시는,

저명한 평론가인 해럴드 블룸의 극찬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이다.

소 설의 배경은 대재앙으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지구. 폐허가 된 그곳을,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걸어간다. 남쪽을 향해가는 그들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얼마 안 되는 물품들을 담은 카트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살용으로 남겨둔 총알 두 알이 든 권총 한 자루가 전부다. 남자와 소년은 밤마다 추위에 떨었고, 거의 매일 굶주렸다. 식량은 늘 부족했고 숲에 만드는 잠자리는 춥고 불안했다. 수일을 굶다가 운 좋게 먹을거리를 만나면 그들은 주린 배와 카트를 채운다.
남자와 소년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잇따른다. 인간사냥꾼에게 잡힐 뻔하기도 한다. 결국 그 사냥꾼을 향해 남자는 아껴둔 총알 하나를 사용한다. 남자의 총에 맞아 죽은 그 사냥꾼의 시신은 나중에 껍질과 뼈만 그 자리에 남게 된다. 그의 무리들이 삶아먹은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말한다. "우리가 사는 게 안 좋니?"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나는 그래도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린 아직 여기 있잖아."
독 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묵직한 어떤 것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이 책을 수식하는 화려한 수상경력으로도 다 말할 수 없는 것. 바로 이 죽음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 남겨놓아야 하는 일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이다. 그것은 희망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출처: http://kr.blog.yahoo.com/ejuhee@ymail.com/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