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31일 금요일

[뉴스] 스위스 군용 칼은 어떻게 유명해졌나

정밀 시계와 함께 오늘날 스위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산품인 빨간색 스위스 군용 칼(아미 나이프)도 그 시작은 보잘 것 없었다.


'맥가이버 칼'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스위스 군용 칼은 작업인부로부터 등산가와 조종사, 외과의사, 우주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싶은 장비이자 현재 미군을 포함한 16개 국 군대에서 공식 휴대용 나이프로 쓰일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처음에는 그저 검은색 손잡이에 칼날 한 개와 스크루 드라이버, 깡통 따개가 달린 조잡한 제품에 불과했다고 BBC뉴스 인터넷판이 30일 보도했다.


19세기 말 스위스 육군은 병사들에게 새 총기를 지급했는데 이 총을 분해할 특별한 스크루 드라이버가 필요했다. 또 때마침 군용급식으로 통조림이 일반화되면서 깡통따개에 대한 수요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스위스 육군 수뇌부는 병사들을 위해 표준 나이프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결정은 당시 독일산 저가 나이프의 공세로 시장에서 수세에 몰려있던 스위스 나이프 생산업자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것이었다.


1884년 스위스 슈비츠 칸톤의 일바하에서 농부와 주부들을 위한 칼을 생산하는 작은 나이프 공장을 연 칼 엘스너는 스위스 군이 군용 칼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를 듣고 1897년 날 3개가 달린 첫 제품을 내놓았다.


병사용 칼이 등장한 지 얼마후에 코르크따개와 가위가 달린 '스위스 장교용 칼'이 시장에 나왔지만, 흥미롭게도 스위스 군 당국은 '장교용 칼'은 군인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코르크따개는 군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장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위스 군용 칼이 세계로 퍼지게 된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 당시 유럽은 미군들로 넘쳐났고, 그들은 귀국선물로 PX에서 판매하던 스위스 군용 칼을 대량 구입해 귀국했다.


칼 엘스너의 작은 공장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이프 제조업체 '빅토리녹스'로 성장했고, 현재 그의 손자가 회장을 맡고 있다.


이후 수많은 실험적인 시제품들이 출현했다가 사라지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늘날 스위스 군용 칼은 우주왕복선 승무원들의 주머니속에 든 채 우주로까지 날아갔고, 314개 날이 달린 제품이 기네스북에 올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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