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5일 월요일

[베이비붐 세대 '2010년 쇼크'] [2] 30년 일한 직장인의 경우

기쁠 때도 있었지(내집마련) 가르치느라 다 팔고 (교육에 올인)
목돈 쓸 일만 남았는데…(자녀 결혼) 세상은 내게 내려가라 하네(은퇴)
40대 평균 저축액 6743만원… 은퇴 후 빈곤층 추락 가능성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판교 톨게이트의 요금징수원 이건재(55)씨는 지난 30년간 한눈팔지 않고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전문대 졸업 후 맨손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세 번 직장을 옮기고 2년간 장사도 하면서 가족 밥 굶기지 않고 두 자녀 대학까지 보낸 자신의 인생이 그리 부족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은퇴를 코앞에 둔 그가 막상 30년 사회생활의 대차대조표를 뽑아보니 결과는 처연했다. 그가 보유한 자산은 분당의 1억8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와 약 2000만원의 금융자산 등 2억원이 전부다. 노후 자금으로 4억~5억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씨는 '아파트 전세금에다 국민연금'에 노후를 의지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이씨가 60세 이후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도 월 60만원 정도여서 충분하지 않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개 그렇듯이, 자녀교육과 내집 마련에 번 돈을 다 소진해 은퇴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씨의 30년 사회생활은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이씨는 군 제대 후 1981년 경기도 동탄에 있는 계량기업체 사무직으로 처음 취직했다. 결혼도 하고 부지런히 일했지만 10여년 만에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월급이 20% 줄어든 철판업체 생산직으로 이직해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일했지만 이번엔 IMF 사태가 터졌다.
▲ 경부고속도로 판교 톨게이트에서 하루 3교대로 요금 징수원 근무를 하는 이건재씨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고객을 대한다. 이씨는 지난 30년간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 만 자녀 교육과 내집 마련에 매달리느라 노후를 준비할 여력은 없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이씨는 1998년 퇴사해 피아노 방음시설을 판매하는 자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만 하다 피아노학원을 돌며 영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결국 버티다 못해 2년 만에 정리하고 취직한 곳이 현재 직장이다.
어려운 일만 기억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1995년 분당 서현동에 처음으로 76㎡(23평) 아파트를 장만했을 때는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다. 결혼 직후부터 8년 동안 월 10만원씩 청약저축을 부어 마련한 내 집이었다. 2000만원 가까운 돈을 융자받아 마련한 아파트지만 힘든 줄 몰랐다.
꼬박꼬박 은행 융자금을 갚다보니 두 자녀가 자라면서 교육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딸은 올해 대학 4학년이고 아들은 지난해 대학에 입학했다. 10년 전부터 부인도 조그만 회사에 경리 일을 나가며 맞벌이를 했지만 은행 융자금과 남매 교육비로 쓰고 나면 언제나 남는 돈은 없었다.
남매가 자라면서 좀 넓은 집이 필요했지만 또 은행 돈을 빌릴 생각을 하니 겁이 났다. 할 수 없이 아파트를 처분해 지금 아파트 전세로 이사하고 은행 빚을 정리했다. 빚은 없지만 대학 등록금이 연 1000만원 가까이 들고 자녀 용돈까지 생각하면 일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내집 마련과 자녀 교육에 직장 생활 30년을 다 보낸 셈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씨처럼 내집 마련과 자녀교육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은퇴 준비를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현재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하는 40~49세 연령층의 순자산은 3억260만원에 불과하다. 이 중 부동산이 2억2600만원이고 저축액은 6743만원밖에 없어 은퇴하면 경제적 불안 계층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은퇴하는 세대가 밀려드는 '국가적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후 준비를 못한 것은 집값이 비싸고, 사교육비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지난해 3월 은퇴자 5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5%가 은퇴 전까지 노후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준비 부족 이유로는 59%가 '자녀에 대한 과다한 투자'를, 다음으로 '소득 부족(38%)'을 꼽았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에겐 아직도 자녀 부양의 부담이 남아 있다. 사회적 정년을 맞아 은퇴가 시작됐지만 자녀들은 대학생이거나 갓 사회에 진출한 초년생들이 많아 목돈 들어갈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씨도 자식한테 의지하지 않고 양로원이라도 가려면 최소 1억원 이상은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뿐이다. 이씨는 "딸의 취업과 결혼, 아들 취업까지 신경을 쓴 다음에나 노후자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후자금을 부지런히 축적해야 할 시기인데 오히려 목돈을 쓸 일이 남아 있는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다.
경제적인 문제 말고도 제2의 인생 설계, 건강 관리 등 은퇴 준비를 할 것이 많다. 그러나 이씨는 "은퇴하면 자영업을 하든지 다시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본인도 1955년생인 충남대 전광희 교수(한국인구학회장)는 "내 주변을 봐도 직장이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가 노후에 대비한 자산을 모아놓지 못했다"며 "이들이 본격 은퇴를 시작하면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수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는 우리 사회의 '블랙홀'"이라고도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09/2010010900049.html?Dep0=chosunnews&Dep1=related&Dep2=related_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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