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5일 일요일

[펀글] 악어와 악어새의 '잘못된 만남'

http://blog.daum.net/iamletmesee/5770



▲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 관계는 잘못 알려진 케이스다.


자연에서 배우는 공생의 지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는 직접 보고 들은 그대로 기록하는 것을 서술 원칙으로 삼았다.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악어새가 들락거리며 이빨을 청소해준다’는 기록도 그가 직접 목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 남긴 이 기록으로 인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는 양쪽 모두 이익을 얻는 상리공생의 대표적인 예로 꼽혀 왔다.
하지만 북부 아프리카의 강가에 주로 서식하는 악어새가 악어 이빨 사이의 고기 조각이나 찌꺼기를 꺼내 먹는 장면이
학자들에게서 실제로 목격된 적은 없다.

악어 등 쪽에 붙어 있는 기생충을 잡아먹는 악어새가 간혹 악어 입 속을 들락거리는 일은 있지만, 입 속의 찌꺼기를 청소해주지는 않는다.
악어의 경우 평생 50회 이상에 걸쳐 3천여 개의 이빨을 갈기 때문에 굳이 악어새 같은 전용 치아관리사를 둘 필요도 없다.

널 리 알려진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 관계가 비록 오류이긴 하지만, 자연계에서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공생생물이 매우 많다.
개미와 진딧물,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 등등 동식물과 세균들이 서로 얽혀 복잡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

녹색 식물의 세포에 들어 있는 엽록체의 조상도 원시세포 안으로 들어가 함께 살게 된 남조류임을 감안하면,
사실은 공생 덕분에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캐나다 댈하우지대의 라이언 커니 박사는 이제껏 알려지지 않는 새로운 공생 시스템을 발견했다.
점박이도룡뇽의 배아와 그를 둘러싼 막에서 진녹색의 광채를 내는 것은 O. amblystomatis라는 단세포 조류인데,
이들은 공생관계에 있다. 이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도룡뇽 배아의 호흡을 도와주고, 도룡뇽은 대사과정에서 질소가 풍부한 노폐물을
배출해 이 조류에게 영양분을 주는 것.

그런데 커니 박사는 이 조류가 도룡뇽 배아와 인접한 외부에 서식하는 것이 아니라 도룡뇽의 전신 세포 내부에 서식하다가
번식 과정에서 모태로부터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광합성 생물체와의 이 같은 밀접한 공생 관계는 산호 등의 무척추동물에서 발견된 적은 있으나,
척추동물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척추동물은 후천적 면역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어서 외부의 물질을 파괴하므로
공생생물이 척추동물의 세포 내부에서 안정적으로 서식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돼왔기 때문이다.
도룡뇽이 자신의 면역시스템을 침묵시킬 만큼 공생이 생존경쟁에서 절실했던 모양이다.


점박이도룡뇽 배아의 특별한 공생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몸속으로 세균이 침입하면 면역 체계가 가동돼 죽이지만, 이상하게도 장에서만은 예외적으로
세균을 받아들인다. 사람의 장 속에는 소화를 돕는 유산균을 비롯해 500여 종류의 세균이 자그마치 100조 개나 살고 있다.

장내 세균은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 장이 자신들을 받아들이게끔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를 잘못 보내거나 장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공생관계가 깨지면 ‘장염’이 와서 설사를 하게 된다.

자연계에서의 공생 관계도 이처럼 간혹 깨지는 경우가 있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질소를 고정해 콩과식물에게 공급하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콩과식물은 안정된 주거지와 산소를 뿌리혹박테리아에게 공급한다. 그러나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 화합물을
제대로 콩과식물에게 공급하지 못할 경우 식물도 산소 공급을 조절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밝혀졌다.


▲ 외부적 압력이 사라질 경우 개미와 아카시아의 공생관계도 깨어진다. 
아프리카 아카시아와 개미 간의 공생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 아카시아가 집을 제공하고 당분을 분비해 개미를 먹여 살리는 대신, 개미는 잎을 뜯어먹는 초식동물들로부터 아카시아를 보호해준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를 쳐 초식동물의 접근을 막은 결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엔 아카시아도 울창해지고 개미도 한가로워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식동물들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카시아가 공생관계를 먼저 깨뜨려 버렸다.

개미에게 제공하던 집과 당분을 점차 줄여서 대신에 자기 몸을 불리는 데 그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 그러자 개미들도 점차 나태해져 아카시아를 해치려는 곤충이 찾아들어도 방어해주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자연계의 공생도 이익관계가 없어지면 여지없이 깨져버리는 셈이다. 이를 뒤집어서 보면 공생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서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즉,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나의 이기성을 조금 자제하고 남의 이기성이 들어설 자리도 남겨둬야 하는 ‘공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공 생 관계가 깨진 후의 결과는 양쪽 다 비참했다. 전기 울타리 내의 아카시아 중 말라죽는 개체가 많아져 군집이 빈약해졌으며,
거기에 살던 개미는 다른 집단의 공격을 받아 세력이 약해졌다.

인간을 표현하는 다양한 용어 중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라는 말이 있다. 더불어 사는 인간, 즉 공생인(共生人)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다른 어떤 생물보다도 더 공생의 지혜를 잘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다.

그런데 첨단 문명을 이룩한 현대인들은 간혹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인간 대 자연과의 공생도 그렇고,
인간 대 인간의 공생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제문제, 환경문제를 비롯해 요즘 사회면을 장식하는 각종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앞서 말한 ‘공생의 지혜’가 자꾸 떠오르곤 한다.




(이성규 / 사이언스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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