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7일 월요일

아버지라는 이름의 당신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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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오늘 제대로 한번 생각해보라.

지금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일요일 점심 무렵 느지막이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텔레비전을 켠다. 다가오는 아이를 대충 한번 안아주면서도 ‘월드컵 하이라이트’의 골 장면이 가려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마누라의 한 마디에 어쩔 수 없이 아이와 장난감을 사이에 두고 앉았지만 눈길은 TV로 가고, 말은 허공으로 향한다. 아이가 당신에게 놀이를 구걸하는 거지인가?

물론 당신에게도 할 말이 있다.

나도 일주일 내내 고생을 했는데 좀 쉬어줘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월요일부터 또 뺑뺑이 돌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내가 제대로 해줘야 이 아무 것도 모르고 울어대기만 하는 녀석도 어떻게 학원이라도 보내서 머리를 틔워줄 수 있고 마누라가 그어 놓은 카드 대금도 처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난 가장 아닌가?

그렇게 말해도 난 당신에게 박수를 쳐줄 생각은 없다. 사실 동정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은 당신의 주제를 모른다. 당신은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안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뻔한 미래도 보지 못하는 인간이다. 자기 마음도 못 보니 스스로 그렇게 위한다는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 볼 수 있겠는가?

당신 미래는 어떨까?

당 신은 때로는 정말로 힘들 것이고, 때로는 힘든 척을 하면서 직장에 몰두하겠지. 일 때문에 술을 먹고,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먹고, 일이 없는 날은 마땅히 뭘 해야 할지 몰라 술을 먹고, 어쨌든 집에 늦게 들어오겠지. 그 사이 부인은 당신을 포기할 것이다. 외로운 순간이 길어지다 보면 다 그렇다. 불쌍하다가도 남편에 대한 원망도 들고, 허전하고, 이게 뭔가 생각도 들 것이다. 물론 당신의 아내는 바람피울 배짱도 안 되고, 늙어가는 겉모습도 신경 쓰이고, 남자들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 생각하니 엉뚱한 짓은 안 할 것이다. 하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아내는 인생의 의미를 당신에게서 찾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당신은 어떤 존재일까?

어릴 때는 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영 성의가 없던 인간. 자라면서는 조금 무섭지만 그래도 가끔 기분을 내곤 하는 인간.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돈을 벌어오는 인간. 때로는 자신이 벌어오는 돈에 생색을 내고 되지 않는 권위를 보여서 재수 없기도 한 인간. 어쨌든 심리적으로 전혀 가깝지 않은 인간. 이제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데면데면한 아.버.지.

그렇게 시간이 간 후 당신이 회사에서도 끗발 떨어지고, 같이 놀아주는 친구도 없고, 전화해주는 술집 마담도 없게 된다면 이제 어떻게 될까? 당신의 오랜 노고를 치하하며 모두 당신을 안아줄까? 그동안 당신을 기다렸다며 일렬로 도열하여 돌아온 탕아를 맞듯 눈물로 당신을 환영해줄 것인가? 아쉽게도 이런 일은 당신의 꿈에서조차 일어나면 사치이다.

가족은 이미 당신을 잊었다.

당신은 돈을 벌어오고, 아빠라는 이름을 가졌고, 그리고 그것이 끝이다. 더 이상 주장할 지분은 갖고 있지 않다. 그 지분을 당신은 긴 시간에 걸쳐 버려왔다. 당신은 이제 가족의 외면을 받는 중늙은이로 다시 거리로 나가 당신과 함께 늙어갈 친구를 찾아야 한다. 괜히 할 말도 없는 친구를 만나 값싼 안주에 소주를 마시며 인생과 정치를 이야기하고, 젊은 것들을 비난해야 한다. 가끔 생활비와 용돈을 내밀 때만 겨우 작은 권력이 작동한다는 것을 느끼며 세월의 허망함을 원망해야 한다. 어쩌면 당신 아버지가 그랬듯 말이다.

오늘도 당신은 상담실에 억지로 끌려온 듯 별다른 말 없이 내 앞에 앉아있다. 당신의 부인이 하는 이야기는 늘 듣던 이야기니 귀에 담기지 않는다. 의사의 말은 좀 신경 쓰이지만 이것은 부인이 듣고 해결해야 할 ‘집사람’의 일이다. 하지만 난 당신이 불쌍하다. 당신의 반쯤 풀어진 피곤한 넥타이 뒤로 당신의 미래가 보인다. 안타까워 미칠 지경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아버지의 80%가 인생에서 실패한다.

당신 잘못은 아니다.

당신도 보고 배운 바가 없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보다 더 했고 당신의 할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더 했다. 그들은 정말로 먹고 살기에 바빴다. 전쟁으로 결단이 나고, 당장 내일 벌어먹을 방법도 막막한 와중에 아이 눈에 자기 눈길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입에 낟알이라도 넣어주면 위대해지는 세상이었다. 아기 새들이 어미 새가 모이를 물어다 주면 입을 벌리듯 부모는 생존을 주었고,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따랐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과 당신 할아버지의 중간쯤 된다. 그들은 대우받지 못하면서도 아주 무시받지도 않으며 늙어갔다. 하지만 당신, 아버지와 심정적으로 가까운가? 아마 아닐 것이다. 좋은 말로 경이원지(敬而遠之). 존경하지만 멀리 한다. 개뿔. 부모 자식 사이가 무슨 그리 먼 사이라고, 불과 일촌사이인데 왜 경이원지를 한단 말인가? 가깝고 사랑하고 존경할 수도 있는데. 멀리서 존경을 받는다지만 다들 외롭다. 그래서 고집도 세고 인생이 썩 재미가 없다. 돈으로 자식들을 흔들기도 하고, 돈도 없으면 그냥 쓸쓸히 늙는다.
 
아이랑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공사다망하여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아이가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아이가 어려울 때는 옆에서 관심을 기울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 저녁은 아이와 약속을 하자. 뭘 하며 아이가 저녁을 보내는지 관찰하고 같이 해 보자. 주말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자. 대단한 곳으로 놀러 다니라는 것은 아니다. 학교 운동장을 가건, 집에서 레고로 같이 씨름을 하든 아이와 데이트를 하자.

아이가 아직 어려서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고?

천만에. 어릴 때 가까워지지 않은 부모 자식 관계는 나이 들어 회복하기가 더욱 어렵다. 한 마디로 5학년 넘으면 끝장이다. 초등 5학년까지 관계를 못 만들면 아이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기는 글러먹은 것이다. 아이가 5학년이 벌써 넘었다고? 미안하다. 할 말이 없다.

이제 다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았으니 세상살이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란 것은 잘 알 것이다. 자신의 생을 구성하는 의미란 결국 상호작용과 주변의 작은 변화에서 온다는 것. 이제 최소한 머리로는 알지 않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 잘 오지 않는다. 온다고 별로 행복해질 것도 없다. 혹시 가족이 당신에게 부담인가? 아이와 보내는 이틀, 각 두 시간 정도가 당신에게 부담인가? 가족을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결코 인생에서 만족할 수 없다. 당신은 세상을 너무 모른다. 눈감기 직전에 깨달을 작정인가?

이런 우화가 있다.

먼 곳으로 보물을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사실 보물은 가까운 데 있다는 이야기. 삶의 즐거움은 가장 가까운 데서 구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지금 아이의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부모 자신의 세계로만 들어가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아빠 자신에게도, 더 나아가 가족 전체에게도 가진 보물을 강 속으로 빠뜨리고 새 보물을 찾아 나서는 행동이다. 이제 강이 흘러가고 배가 움직이면 그 보물이 떨어진 곳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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