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10년뒤 미래 설계’ 오늘의 삶을 바꾼다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101124203013450&p=hani

[한겨레] 인생 이모작 강의 잔잔한 공감 

직장인들 일상 벗어나 성찰 

생각이 바뀌자 생활도 변화 

희망제작소 '퇴근 후 렛츠' 화제 

에스케이(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7년째 일하는 김민정(38)씨는 지난 7월 살던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바꾸려고 집을 내놨다. 인터넷 보안업체에서 7년간 근무한 이정훈(33)씨는 월급을 절반으로 줄여 비영리단체로 이직했다. 3년차 은행원 이윤수(29)씨는 느닷없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백두엔지니어링 대표인 유상모(48)씨는 비영리단체에 5년간 1000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지난여름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비밀의 열쇠는 희망제작소 시니어사회공헌센터가 지난 6~7월 마련한 직장인을 위한 미래상상 프로젝트인 '퇴근 후 렛츠(Let's), 10년 후 나를 설계한다'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 후반부터 퇴직을 앞둔 50대에 이르기까지 직장인 46명이 참가비 25만원을 내고 모였다. 화창한 토요일 오전, 서울 성북동 옛길을 산책한 직장인들은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행동생태학)의 '미래사회 그리고 인생 이모작'을 시작으로 매주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꼬박꼬박 들었다. 강의는 유지나 동국대 교수(영화영상학)의 '호모 루덴스(노는 사람)로 살기', 제윤경 에듀머니 이사의 '지금, 돈의 주인으로 사는 법',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길에서 길을 찾다', 김재춘 아름다운가게 정책국장의 '지역공동체에서 배운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세계에 당신의 무대는 많다' 등으로 이어졌다. 참가자 천현정(34)씨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 마라', 그 단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고 말했다.

생각의 변화는 순식간에 생활의 변화로 옮겨갔다. 투자자문 일을 하며 8년간 경력을 쌓은 천씨는 신생 회사인 '한국창의'로 직장을 옮겼다. 첫 직장을 6년 반 만에 그만두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그는 월급을 4분의 1로 줄여 다른 회사로 이직했지만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눔을 실현하는 금융기업을 지향한다"는 말에 이끌려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이정훈씨는 '신의 직장'에서 비영리단체인 희망제작소 회원재정센터로 이직한 경우다. 원래는 40대가 되면 실천하려던 '희망사항'이었다. 그는 "살면서 다른 직업 세 개는 경험하고, 적게 벌면 적게 쓴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인터넷 업체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온라인 기부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계획이다.

김민정씨는 대출금을 다 갚은 아파트를 부동산 중개업소에 미련 없이 내놓았다. '집은 사두기만 하면 오른다. 적어도 은행보다 낫다'는 주변 사람의 말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고민 없이 집을 샀던 그였지만, 강연을 듣고 난 뒤엔 '새로운 사람, 새로운 동네를 좋아하는 내가 굳이 집을 소유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기업문화팀에서 일하는 김씨는 지난 9월 말엔 제주올레를 갈 수 없는 동료를 위한 '서대문 올레길 걷기' 행사를 점심시간에 열기도 했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만 280명이나 됐다.

금융계에서 20년간 일한 최덕만(46)씨는 은퇴 후에 2년마다 100㎞씩 지방으로 내려가며 살기로 아내와 합의했다. 최씨는 "은퇴하고 9억, 10억원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과장됐다는 강의에 인생 후반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며 "지방 이곳저곳에 살면서 여행하고 새로운 공동체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생활 29년째인 유상모씨는 영화 < 더 리더 > 를 보고 난생처음 펑펑 울었다. 유씨는 "토목 설계만 하던 사람이라 감성이 부족했는데 더 늦기 전에 삶을 즐기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산악자전거를 구입해 한강변을 매주 달리고, 지난달에는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를 30년 만에 해냈다.

20대의 삶도 달라졌다. 아버지의 권유로 참가한 신한은행 이윤수씨는 늘 마음에 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었던 꿈, 피아노 배우기를 실천했다. "친구들은 조급하고, 30대의 성공을 많이 얘기하는데 인생이 100년이라고 생각하니까 하고 싶은 일을 그때그때 실행하며 찬찬히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삼성생명 이윤모(45)씨는 "매달 참가자 모임을 열어 달라진 모습을 얘기하며 서로 용기를 북돋운다"며 "돈, 주식, 골프 얘기를 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라 즐겁다"고 자랑했다.

남경아 시니어공헌센터장은 "직장인이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인생 후반전을 미리 준비하도록 기획했다"며 "1기의 변화가 놀라워 내년 상반기에 2기를 모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 '퇴근 후 렛츠' 강사의 조언 

꼭 필요한가? 신중하게 소비하라 

신용카드가 화폐의 기능을 대체하면서 소비생활은 쉽고 간편해졌다. 신중하게 고민해 물건을 고르는 사람이 되레 눈치를 본다. 때로는 '왜 그렇게 쫀쫀하고 구질구질하게 사느냐?'라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신중한 소비는 인색한 소비와는 전혀 다르다. 부끄럽고 초라하지도 않으며 망설이고 주저하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거쳐 소비의 질을 높이는 지적인 과정이다.

심각한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중산층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먹고살기 위해 빚을 낸 게 아니다. 합리적 의사 결정이 결여된 소비가 불러온 결과들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재료를 냉장고에 쌓아두고도 또다시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왜곡된 소비 행태가 문제의 근원이다.

오늘날 우리는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는 모든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필요 이상으로 큰 집에 살면서 많은 관리비를 부담해야 하고, 비싸게 구입한 전자제품들을 사용하느라 전기요금을 비롯해 각종 유지·관리비를 물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과 재테크에 매달려 하루하루가 불편하다.

재무 상담을 받은 어떤 주부가 큰 결심을 하고 쓰지 않는 물품들을 정리했다. 전자제품 가짓수를 줄이고 유행 지난 옷들로 넘쳐나던 옷장을 정리했다. 수납공간을 빼곡히 채웠던 물건들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전기요금이 줄어들고 각종 대여료를 절감했다. 줄어든 비용만큼 휴가비를 여유 있게 책정하고 취미생활과 노후 이모작을 위한 자기계발 비용을 늘렸다. 특별히 소득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면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불편한 소비를 자처했는데도 이전에 비해 삶의 만족도는 늘었다고 한다. '할인'이라는 문구에 당장 지갑을 열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먼저 떠올린다고 했다. 다소 불편한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전자제품을 소유하고 유지하기 위해 지급하던 비용으로 콘서트 티켓 한 장을 더 구매하게 됐다고 한다.

스티브 코비 박사가 말하는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을 떠올려 보자. 소중한 것과 중요한 것부터 먼저 하는 시간관리는 의사 결정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소비의 원리도 이와 같다. 신중한 소비야말로 최상의 선택으로 이끌어 주는 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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