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1일 월요일

쥐어짜기 경영’이 낳은 역병, 우울증



  
 
독일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약 400만 명이 병원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경쟁에 도취된 나머지 자신의 한계를 넘어 과다하게 에너지를 쓴 탓이라는 진단이다. 경쟁은 인류가 경제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21세기 경쟁의 특징은 외부의 강제 없이 자발적 복종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이런 ‘자아착취’는 마치 역병처럼 순식간에 온몸의 에너지를 파괴하는 강력한 우울증을 낳는다.
그럼에도 점점 더 많은 ‘일류’ 기업들이 구성원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마치 경쟁만이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듯. 그러나 성과는 피를 말리는 경쟁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강력접착제 같은 끈끈한 협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는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이미 ‘21세기 역병’이 창궐한 단계에 온 것은 아닐까.


마르쿠스 데트머 Markus Dettmer
자미하 샤피 Samiha Shafy
얀코 티츠 Janko Tietz <슈피겔> 편집위원
그녀의 삶은 점심시간에 전구를 사러 나갔을 때 무너져버렸다. 잘나가는 심리치료사이자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며, 직접 건축한 온돌주택의 주인이었던 바바라 크라우스가 빨간 신호에 걸려 멈춰 있을 때 은색 승용차가 뒤에서 그녀의 차를 추돌했다. 그녀는 거의 다치지 않았고, 의사는 그저 가벼운 현기증이 있다고 진단했다. 크라우스는 하루쯤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그녀는 이상하게 힘이 들었다. 끊임없이 통증을 느꼈고, 불면증과 시각장애까지 찾아왔다. 은행 계좌번호도, 스파게티 요리를 어떻게 하는지도 잊어버렸다. 마침내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겹게 됐다. 그녀는 이렇게 한순간에 탈진해버렸다.

휴가 때도 무기력하고 짜증이…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크라우스의 상태는 점점 악화됐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녀는 마치 방관자처럼 자신의 삶이 서서히 무너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년 만에 크라우스는 저축과 집, 심리치료실, 그리고 10살 된 아들의 양육권까지 모두 잃어버렸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독일 남부에 있는 별장 한 채였다.
야코프 베커의 경우도 모든 일이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시작됐다. 8월의 어느 월요일, 보험매니저 팀장인 베커는 4주간의 가족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휴가가 그에게는 아무런 휴식이 되지 못했다. 휴가 내내 무기력하고 피곤했으며 짜증이 솟구쳤다. 베커는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켰다. ‘받은 편지함’이 전자우편으로 넘쳐났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니 너무나 당연한 노릇이었다. 회사에 무슨 큰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전자우편을 들여다봤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주에 유리창 청소부…, 중요한가? 회사 본부의 긴급한 문의…, 안 중요한가? 베커는 모니터를 노려보다 그만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수화기를 전화기에서 내려놓고 유리로 된 사무실의 문을 잠갔다. 식은땀이 났고 맥박이 빨라졌으며 뱃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는 화장실 변기로 달려갔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외로운 인간인 듯 느껴졌다.
언뜻 보면 독일인들이 그렇게 나쁜 상태인 것 같지는 않다.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늙어서도 건강한 경우가 과거보다 많다. 1970년대 이후로 보험급여율도 거의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요통이나 심장질환, 혹은 위장병으로 결근하는 근로자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대형 은행 거래장. 오늘날 업무의 공간적 한계는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질환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런 정신 질환은 ‘소진증후군’ ‘피로증후군’ ‘적응장애’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피곤한 사람이 허약한 사람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
심리적 장애는 많은 나라에서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직업적 스트레스를 ‘21세기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세계의 질병 부담’이라는 WHO 연구에서 전문가들은 세계 곳곳에서 수백 가지 질병을 조사했다. 오늘날 이미 부유한 나라에서는 잃어버린 삶의 질이나 시간으로 인한 우울증이 가장 높은 질병 부담을 야기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개발도상국과 신흥공업국에서도 심리적 질병은 확산되고 있다. WHO는 2030년까지 우울증이 심장순환 질환과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를 추월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병 발생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독일인은 이미 피로에 지친 민족이다. 1년에 거의 3명 중 1명이 심리장애를 앓고 있다. 1990년 이후 정신 질환으로 인한 보험급여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독일인은 10년 전보다 두 배나 많이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셈이다. 2008년 건강보험사들은 우울증 치료에만 52억유로를 지출했다. 2002년 이후 다른 질병 치료비의 증가분보다 두 배 더 많다.
최초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독일인 가운데 2명 중 1명이 32살 이하였다. 그중에는 어린아이도 있다.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의 아동·청소년 건강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1명이 정서불안을 앓고 있으며, 20명 중 1명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질환을 앓는 사람 가운데 유명인도 꽤 있다. 최근 스키점프 선수 스벤 한나발트와 유명 요리사인 팀 맬처, 출판인 미리암 메켈, 정치인 마티아스 플라체크 등이 자신의 심리적 소진증후군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축구선수 세바스티안 다이슬러는 우울증 때문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09년 11월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로베르트 엔케의 사례는, 사회가 우울증을 심리적 질병으로 공개해 다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멀티태스킹? 그런 건 없다네 직업 세계에서 심리적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은 아직도 능력 부족으로 여겨진다. 심리적 소진증후군이라는 개념부터가 그 뒤에 어떤 심리적 고통이 숨어 있는지 감추고 있다. 진단용 교과서에는 이 성공적이고 확실한 유행병의 진단이 미미하게만 나와 있다.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소진증후군이 우울증이라는 낙인을 미화한 동의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이자벨라 호이저 베를린 샤리테 병원 정신과 과장은 소진증후군을 ‘남성적 개념’이라고 잘라 말했다. “남성이 소진증후군을 발명해낸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이 단어에는 그 사람이 적어도 전력을 다했고 기진맥진한 상태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우울 장애가 증가하는 주된 이유는 현대사회가 점점 더 짧은 주기로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은 작동하지 않아요. 그것은 그저 뇌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일에 불과하지요.” 정신과 전문의 호이저 교수는 말한다.
만성 스트레스는 다시 필연적으로 만성적 과로를 부른다. 더 일찍 나타나느냐, 조금 늦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모두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마치 질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모든 우울증이 심리적 소진증후군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심리적 소진증후군은 피로우울증이다.
1970년대 초 소진증후군이라는 개념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독일계 미국인 심리분석가 헤르베르트 프로이덴베르거였다. 프로이덴베르거는 뉴욕에서 봉사단체의 명예직원들이 업무가 과중한 시기가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정신적·신체적 쇠약은 탈진, 좌절, 신경과민 그리고 육체적 질병과 함께 나타난다. 후에 프로이덴베르거와 함부르크 출신 심리학자 마티아스 부리슈 같은 소진증후군 연구의 선구자는 이 현상을 다양한 직업군으로, 나중에는 사생활 영역으로까지 확장했다.
카를스루에 조형대학에서 강의하는 한국 출신 철학자 한병철은 우울증이나 소진증후군 같은 정신적 고통을 21세기의 주도적 질병이라고 본다. 한 교수는 현대의 능력 중심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고용주인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억압자인 동시에 피억압자라고 말한다. “일과 성취욕의 과다는 자기착취 수준으로 심화됩니다. 이것은 타인에 의한 착취보다 효율적이에요. 자기착취는 자율적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사회에서는 기대와 요구가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실패와 사회적 몰락에 대한 불안도 증가한다. 왜냐하면 이제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친 자아는 동작을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에랑베르그는 말한다. 에랑베르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새로 주어진 자유와 선택권을 더 이상 행복한 삶을 위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울증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직업 세계의 고단함이 그를 내동댕이쳤을 때 프랑크푸르트의 보험매니저 팀장 야코프 베커는 41살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스포츠카에 비유한다. “경력을 쌓을 때마다 속도를 늘릴 수 있어요. 그리고 도로를 더 빨리 달리는 거지요.” 어느새 그는 출구를 놓쳐버릴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베커는 거대한 시커먼 벽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으나 벽을 피할 수도 차를 멈출 수도 없었다. “그냥 달리면서 충돌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지요.”
베커의 직장 생활은 어떤 장애물도 없이 승승장구했다. 그는 명문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두 번의 지원 만에 보험회사에서 돈 잘 버는 직업을 얻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과장이 됐다. 2년마다 그의 책임이 늘어났다. 마흔 살에 그는 매니저가 됐다. 아내와 두 아이, 좋은 집, 멋진 차, 그리고 특징 없는 삶의 이력….
그는 이 모든 것이 저절로 굴러들어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는 ‘우수’가 충분히 노력하면 ‘최우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베커는 어떤 책임도 마다하지 않았고 시계를 쳐다본 적도 없었다. 무엇이 먼저인지 망설여질 때는 새로 도착한 전자우편이 피트니스클럽을 가는 것이나 옛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저녁 늦게 귀가하면 맥주를 마시고 칩을 먹었다.
그의 회사는 5년 전 한 다국적기업에 합병됐다. 이제 더 이상 프랑크푸르트에서만이 아니라, 뮌헨이나 파리 혹은 아무데서라도 결정이 내려진다. “내가 무얼 하든 이제 전략 개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동안 그는 주말에도 자신의 블랙베리를 눈에서 떼놓지 못했다. 이 거대 기업의 누군가는 항상 일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요일에도, 아침 6시에도, 한밤중에도.
베커는 수년간 모든 경고를 무시해왔다. 두통, 설사, 발한,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피곤함.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도 흥미를 잃었다. 결국 8월의 어느 월요일 ‘시커먼 벽’과 충돌했을 때 베커는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달아났다.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2시간 뒤 그는 한 가정의원의 의자에 앉아 울고 있었다. 진단 결과는 소진증후군이었다.
“미칠 것 같았죠. 이제 나는 페스트나 콜레라처럼 받아들여지는 낙인이 찍히는구나 싶었어요.” 1970∼80년대에 심리적으로 소진된 사람들은 이상적이고 이룰 수 없는 목표를 갖는 사회적 직업에서 전형적으로 실패를 경험했다.
  
 

세계화 시대의 규범, 유연성
세계화 시대에 신속함과 완벽함, 영구적 대체 가능성은 유연성을 최대화하는 가운데 사회적 규범이 돼버렸다. 그와 동시에 세계가 저 밖에서 점점 빠르게 돌아가고 있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후퇴 공간은 사라지고 있다. 전통적 가족구조는 해체됐다. 남성도 이제는 점점 가정과 직업을 조화시키고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 의지가 돼주었던 사회망은 해체된다. 동호인회, 노조, 교회 등의 구성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사회는 개별화돼간다. 현대의 직장인은 기동성이 있다. 그는 오늘 여기서 일하고 내일은 저기서 일하며, 페이스북이나 다른 친목 사이트를 통해 가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 부작용으로 신뢰와 지속성이 사라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무직은 공간적으로 직장에 매여 있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과 노트북 컴퓨터로 인해 거의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다. 노동시간 연구자들은 여가시간에도 전자우편과 스마트폰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는 “업무의 공간적 한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메히틸트 외히슬레와 아니나 미샤우는 자신들의 책 <노동시간, 가족시간, 삶의 시간: 균형은 사라졌나?>에서 “노동시간은 급격히 변하고 있고 그와 더불어 일상적 삶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고 썼다. 이들의 의견을 요약하면, 일과 여가의 관계를 새로 구성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현대사회의 고용주는 항상 회사를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이를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질주하는 정지’라고 이름 붙였다.
이런 현상은 토르벤 리히터가 지난해 9월 경험해야 했던 것처럼 이제 더 이상 거대 다국적기업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건축 현장감독인 리히터는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중간 규모 회사의 턴키 공사를 하고 있었다. 리히터의 부서는 생긴 지 겨우 6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곧 매출이 급증했다. 2009년 이 회사는 10%라는 최고의 매출이익률을 올렸다. 건설업계의 다른 업체들은 2~4% 올리는 데 그쳤다. 마치 성공에 취한 듯 리히터 부서의 매니저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내놓았다. 전년에 턴키 공사로 2700만유로를 벌어들였는데, 올해는 무려 30% 이상 증가한 3500만유로의 실적을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기대수익률은 5%에 그친다.
그런데도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다. 팀장 1명, 견적담당 3명, 구매담당 1명, 현장감독 5명, 프로젝트담당 2명, 비서 2명. 노동강도가 세진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예를 이 회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한 동료는 징엔의 화물차 서비스센터 신축공사와 뮌헨의 어린이집 신축공사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습니다.” 양손을 주먹 쥔 채 리히터는 말했다.
“그는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징엔에 있었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뮌헨에 있었어요.” 결론적으로 매일 적어도 6시간 동안 자동차를 운전해야 한다는 말이고, 원래 있던 현장 작업이 더해졌다. 거기에 사무실에서 준비 업무와 마무리 작업까지 더해졌다. 리히터 자신은 당시 바이에른의 호텔 신축 공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저는 매일 밤 11시까지 공사장 컨테이너에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삶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기록상으로만 보면 오늘날 독일인은 이전보다 훨씬 적게 일한다. 1970년대에는 모든 고용주가 평균적으로 연간 15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했다. 이 수치는 최근 60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초과근무가 공식적으로 계산됐다는 것이고, 오늘날에는 임금 협상시 타결된 금액보다 더 지급해 초과근무분을 무마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백만 근로자들이 노동법에 정해진 노동시간 상한선(주당 48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모든 직장인의 27%가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근무했다. 오늘날에는 그 수치가 16% 이하다. 나머지는 야간근무, 교대근무, 파트타임, 초과근무 그리고 노동시간 탄력제 근무 등에 시달린다.
사회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와 직장에서 증가하는 압력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한 번쯤 피로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누군가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행을 견뎌내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허물어져버리는 것일까?
“유전자가 당연히 큰 영향을 줍니다.” 베를린 샤리테 병원 정신과 전문의 이자벨라 호이저의 말이다. 그리고 1살 때까지 받은 영향도 중요하다. 트리어대학 심리학과 디르크 헬하머 교수는 유아기 유전자의 환경조건적 활성화와 비활성화를 그 뒤에 나타나는 스트레스성 질환에서 ‘최고로 가장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본다.
헬하머 교수는 “태어나기 전, 그리고 1살 때까지의 기간에 아이의 중앙신경체계가 발달하고 어머니의 스트레스에 반응하거나 초기 유아기의 부정적 환경에 반응한다”고 설명한다. 호르몬 경보 시스템이 너무 일찍 지속적 스트레스를 알게 되면 나중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스트레스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에서 예비 엄마가 자주 압박감을 느끼게 되면 선천적으로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기도 점점 더 많이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삶이 힘들어지면 이미 스트레스를 경험한 아이는 피로·소진·우울에 더 빨리 반응한다. 호이저 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직업을 갖고 좋은 대우를 받고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안정적·정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우리 모두는 더 잘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돌아다닌다고 모두 우울해질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그런 기기를 끌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운동과 성생활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스트레스에 대한 대책 없이 인간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정신적 압박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는 육체와 정신이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심각한 위험과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생물학적 스트레스 시스템이 사느냐 죽느냐에 관한 상황에 먼저 노출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시스템이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하는 즉각적인 원시적 반응이 통하지 않는 부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조만간 혼란에 빠지게 된다. 부신피질자극호르몬과 코르티솔,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등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고,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 같은 성호르몬의 생성을 억제한다. 신체는 영구적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지속적인 경계는 불면, 긴장, 건망증, 면역력 약화, 피로 등을 불러온다.
이런 상황에서는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된다. 생리학적으로 봤을 때 육체적 활동은 싸움이나 도망치는 반응과 비슷해 스트레스 호르몬을 해소시킨다. 성생활도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 시스템이 오랫동안 균형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다시 균형을 찾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습니다.” 베를린 샤리테 병원의 스트레스 연구가 마츠다 아들리는 경고한다.
불균형 상태에서 시간이 많이 지나면 뇌가 구조적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의사 사무엘 멜라메드 교수와 그 연구팀은 만성 스트레스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분야 출신의 직장인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군의 약 20%에서 임상적으로 주목할 만한 피로 증상을 확인했다.
“피로 증상을 보인 사람들의 혈액에서 염증표지물질이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고, 지질 및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습니다. 이는 심장 질환, 뇌졸중, 당뇨병 등 고전적 위험 인자입니다. 피로로 인한 질병에는 위와 장의 질병, 근육 질환, 골 질환, 관절 질환 등이 있습니다.” 멜라메드 교수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밖에도 만성 스트레스는 남성의 성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55살의 조냐 야코프젠은 ‘심각한 소진증후군’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바트브람슈테트에 위치한 쇤 클리닉에서 7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오늘이 입원 마지막 날이다. 그녀는 치료사 옆에 앉아 이곳에서 지난 기간에 무엇을 배웠는지 말하고 있다. 치료사가 커피를 마신다. 그녀는 조용하고 빠르게, 그리고 집중해서 이야기한다.
“저는 항상 많은 일을 동시에 해왔어요. 남편이랑 같이 보험대리점을 운영했어요. 전국적으로 세미나도 열고요. 그리고 두 딸을 키웠죠.”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그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고 한다. 어느 순간 한 번쯤 푹 쉬어야겠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쉬는 날이 없었어요. 주말도 없었고요. 어쩌다 푹 자고 일어나도 컨디션이 좋지 못했어요.” 야코프젠은 복통, 소화불량, 목 통증이 생겼고 기침도 계속했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때도 있었다. 사업상 미팅이 있을 때는 갑자기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다. 주치의가 그녀를 아픈 상태라고 진찰했을 때도 그냥 계속 일했다. 의사가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할 때까지 일을 했다.

인내가 필요한 정신질환 치료
치료사인 베아테 케텔후트는 첫 번째 단계로 소진증후군 환자들과 더불어 종종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내부 동인을 찾는다. “제가 어릴 때는 가정교육 방침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케텔후트가 이야기한다. 야코프젠도 자신의 내부 동인을 꼽아본다. “저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어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요. 견뎌내야 했습니다. 저는 가치가 없어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뭔가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치료사는 다음 단계로 환자와 함께 교정이 가능한지 탐색해본다. 그러나 전체의 삶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그런 방침은 오랫동안 사람을 성공적으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야코프젠은 칠판에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강아지를 그려서 방에 걸어놓았다. 두 번째 칠판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한 소녀를 그리고, 그 위에다 이렇게 적었다. ‘나는 사랑받을 만하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쓸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 사이에 이유를 10가지 정도 적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호감을 주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하기 때문에, 친절하고, 남을 잘 도와주고….” 그녀는 더 크게 웃으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아직 완전히 내면화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내일 저 칠판을 집에 가져갈 생각이에요.”
병원에 7주간 입원하는 것만으로 진정 삶이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수석의 게르노트 랑스는 말한다. “그래서 저희는 지금 환자들이 6개월, 12개월 그리고 24개월 뒤에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밝혀내기 위해 에펜도르프대학병원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클리닉의 야심찬 목표는 환자의 능력을 온전히 다시 찾아주는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랑스는 “세상은 험난하고 정의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분명해졌다. 정신적 질병에서 회복하는 것은 육체적 질병과 달리 더 힘이 든다. 익숙했던 삶으로 천천히 조금씩 되돌아가는 것이다.
소진증후군 환자였던 디터 뮐러는 지난해 7월 말, 쓰러진 지 석 달 만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다. 깊은 목소리에 덩치가 크고 체격이 좋은 뮐러는 20년 전부터 백화점 마케팅 부서에서 일해왔다. 큰 불행을 맞아 그는 결국 위기에 내몰렸다. 형이 암에 걸리고 아내와는 이혼하게 된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유니레버의 새 사옥 내부. 노동친화적인 환경으로 설계됐다.
언젠가부터 일하는 것도 아무 위안이 되지 못했고 새로운 고통만 안겨줄 뿐이었다. 뮐러는 삶에 불안을 느꼈고 공황상태에 빠졌으며, 고통에 시달렸다. 치료를 받기 전 그는 집 안에 주저앉아 술로 근심을 달랬다.
“클리닉에서 퇴원할 때 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다시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른바 ‘함부르크형 모델’을 선택했다. 처음 3주간은 매일 4시간씩 일했다. 그다음 3주 동안에는 근무시간을 6시간으로 늘렸다. 그러고 나서 직장에서 종일 근무를 했다.
그러나 그는 곧 4시간이 자기 능력의 한계라는 걸 깨달았다. 전보다 더 느리게 일했지만, 저녁에는 피로에 지치기 일쑤였다. 클리닉에 함께 있었던 그와 자주 통화하는 사람도 상황이 비슷했다.
뮐러가 다시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하자 공황상태도 다시 찾아왔다. “완전히 복귀한 지 2주 만에 저는 처음 출발했던 곳에 다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어떻게 불안을 다스리는지 배웠다. 그는 업무를 포기했다. 다시 돌아갈지는 그도 아직 모른다. 뮐러는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면담치료를 받는다. “의사는 제가 고비를 넘으려면 1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유니레버의 혁명적 발상 전환 
대부분의 독일 기업들은 집단적 소진증후군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사과에서는 무시됐고 높은 단계에서는 뒷전이었다. 생활용품 회사 유니레버 같은 소수의 기업만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회사 상표로는 ‘랑게제’ ‘라마’ ‘악세’ 등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니레버 본사는 함부르크 시내의 1964년에 지어진 건물에 있었다. “건물 분위기가 위압적이었습니다.” 유니레버에 고용된 의사 올라프 차르네츠키는 말한다. “온 천지가 벽이었고, 직원들은 그 안에 차단돼 있었습니다.”
차르네츠키는 1995년부터 유니레버에서 근무했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고전적 운동체계 질병이 갈수록 심리장애 때문에 유발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가 스트레스받는 조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직원의 5%가 중독이나 불안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10%가 정신건강이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2009년 유니레버가 밝고 개방적인 새 건물로 이사하면서 스키 연습에서부터 기공 수련까지 모든 게 조화롭게 제공되는 피트니스센터가 마련됐다. ‘릴랙스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마사지 소파도 있다. 옥상 정원엔 무선 인터넷이 갖춰져 여름에는 직원들이 밖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통신기술을 유용하게 적용해 자유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바람직한 사례인 셈이다.
회장은 직원들이 일주일에 하루는 집에서 근무하고 핵심 업무 시간은 38시간이 넘지 않도록 지시했다.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횟수도 제한됐다. 2년 전부터 전자우편은 긴급성에 따라 ‘알림’ ‘행동’ ‘긴급’으로 등급화됐다. 그때부터 보내는 사람도 제한됐다. 차르네츠키는 “사람들이 항상 모두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하루의 계획을 확실하게 세우고, 만약 저녁 6시30분에 퇴근하기로 계획했으면 그렇게 하라고 조언한다. 마지막으로 유니레버는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외부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함부르크 센터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직원 1100명 가운데 20%가 상담을 청했다.
공황을 겪은 지 3개월 만에 야코프 베커도 자신의 보험회사로 돌아왔다. 그는 완전히 복귀했지만 매니저 팀장 외의 일은 하지 않는다. 외래 병동에서 8주간 치료받는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베커는 과거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목적도 분명치 않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대학 공부를 하고 직업을 선택했다. “제가 원래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가 아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보험맨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다.
베커는 몇 주 전 우연히 구직광고 하나를 보게 됐다. 봄이 되면 그는 다른 도시에서 아이들과 일하는 한 공익단체의 인사과장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때로는 삶을 변화시키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베커는 웃으며 말한다. “인생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니까요.”
ⓒ Der Spiegel·번역 김지현 위원

소진증후군
약 400만 명의 독일 국민이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1998∼2009년 심리적 질병으로 인한 결근은 76% 증가했다. 2009년 일찍 은퇴하고 연금 수령 승인을 받은 사람의 38%가 정신 질환으로 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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