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2일 일요일

[펌] “한국인들이 개, 돼지냐…4평 원룸서 살라니”
http://news.donga.com/Culture/3/07/20120720/47933104/1

땅콩집-땅콩밭 아이디어는 40년전 ‘4평 원룸’서 싹텄죠
건축가 김원의 ‘오스왈드 네글러 사건’



김원의 원(洹)은 중국 허난 성의 강, 원수(洹水)에서 땄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라는 뜻에서 원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원수 유역에서 발견된 은나라 갑골문이 동이족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8일 아침 6시 반경 서울 마포구 창전동 산2 와우산 기슭의 와우시민아파트 제15동의 콘크리트 5층 건물이 무너져 주저앉는 바람에 안에 살고 있던 열네 가구 예순한 명과 아래 주민 세 가구 열두 명 등 모두 일흔세 명이 깔렸습니다. 오후 2시 현재 열한 명은 시체로 발굴되고 서른여섯 명은 부상을 입고 구출됐으며 아직 스물여섯 명은 묻혀 있는데 대부분 압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1970년 4월 8일, 김원(69·건축가)은 뉴스를 들으면서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무허가 불량건물을 정리하고 서민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내놓은 서울시 정책이 처참한 맨살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3년여 전 한 장면이 스쳐갔다. 》

○ 네글러의 기억

“이 나쁜 새끼! 한국 사람은 개, 돼지인 줄 알아. 너 같으면 네 평에서 살 수 있겠어? 뭐, 거적을 치고 살라니, 한국 사람을 어떻게 알고 하는 소리야.” 

김현옥 서울시장(1966∼1970년 재임)이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상대는 오스왈드 네글러. 당시 건설부에 고문 자격으로 와 있던 미국인 건축가이자, 도시계획전문가였다.

6·25전쟁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서울은 지방민들의 무작정 상경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도심 산비탈에는 무허가 판잣집 같은 불법주택이 늘어났다. 불도저라는 별명의 김 시장은 이를 정비하려고 마음먹었고, 방안으로 시영아파트를 구상했다. 그 구체적인 안을 김원이 일하던 김수근 건축연구소에 요청했다. 하지만 도심 불량주택(단지)을 어떻게 재생해야 할지 우리나라도, 연구소도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네글러 씨와 상의를 했지요. 네글러 씨는 자신이 건설부 안에 만든 ‘주택도시계획연구소’ 사람들과 의논을 했고요.”

그렇게 공동으로 만든 안을 김 시장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탈’이 난 것이었다. 문제가 된 네슬러 씨의 안은 바로 4평(13.2m²)짜리 원룸형 아파트였다. 서울시가 뼈대와 벽, 그리고 전기 상하수도 난방 설비 등을 완벽하게 해주면 입주민들이 창문이나 도배, 장판 등의 인테리어를 소득수준에 맞춰서 스스로 갖추게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돈이 정 없는 사람들은 창에 거적을 치고서라도 살 수는 있게 하되 소득이 많아지면 두 채를 털어서 살 수 있게 하고 최대 네 채(16평·52.9m²)까지 합쳐서 살도록 하자는 착상이었다.

“네글러 씨의 생각이 제게는 정말로 인상적이었어요. 거기에 원래 살던 사람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안 주면서 자립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자는 안이었거든요.” 정부나 시는 기본적인 보조만 하고 사람들 스스로 자기 집을 지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방식이었다. 그렇게 지으면 주택 단가는 시세의 절반 미만으로 떨어지게 되고 원주민은 부담금 걱정 없이 입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힌 채 떠돌 필요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너무도 작게 느껴지는 4평이라는 넓이와 거적이라는 단어가 김 시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

네글러 씨의 안은 거부됐고 시영아파트는 11평, 13평 두 가지 형태로 지어졌다. 와우산을 비롯해 도심 산동네 주민들은 사실상 쫓겨나 경기도 광주대단지로 이주했다. 그리고 와우아파트는 붕괴했다.

공공건물을 설계할 때, 공공주택을 지을 때, 건축가는 시민이라는 건축주에 대해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 것인지…. 20대 중반의 초보 건축가 김원이 가슴에 새긴 화두였다.

○ 스스로 ‘짓는’ 집

카사비앙카(하얀 집·이탈리아어). 네글러 씨의 ‘사건’ 이전까지 김원에게 주택의 이상형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거주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주택’이 대신 자리 잡게 됐다.

김수근 선생 밑에서 일하는 동안 그 영향으로 그는 소형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러나 당시 연구소에는 럭키(현 LG) 구인회 회장의 250평짜리 자택 설계 같은 일감이 많았다. “김 선생님이 어느 날 ‘야, 너는 도대체 사무실 분위기를 모르냐’고 하시더라고요. 속으로 갈등도 했고 내가 독립하면 저렇게 안 하겠다는 생각도 가끔 했지요.”

햇수로 6년을 일하고 독립을 한 지 2년 뒤인 1972년, 네덜란드 정부 초청 유학의 기회가 왔다. 개발도상국 학생들을 불러 로테르담의 대학원 연구소에서 주택문제를 공부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개발도상국에서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한 주택단지를 어떻게 조성해야 하는지가 주요 연구과제였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집을 짓게 만들면서 그동안 꾸려온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도시의 역사를 꾸려나가도록 하는 것, 그걸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고 할까요.”

네덜란드에서 그는 망외의 ‘소득’도 올렸다. 한국 전통건축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첫 수업시간, 하스 박사라는 노교수가 그의 이름 ‘킴(Kim)’을 부르더니 일어나 보라고 했다. 하스 박사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이 사람을 눈여겨봐라. 코리아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아는가. 내가 아는 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현명한 난방시스템인 온돌이 있는 나라다. 지금까지 있어 온 수천 개의 민족 중 그 어떤 다른 민족도 생각지 못한 것을 만든 나라다.” 조립식 주택 전문가인 하스 박사는 과거 옛 소련에 노하우를 전수하다 북한으로부터도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온돌의 존재를 알게 됐던 것이다.

그는 ‘나도 모르는 걸 외국 사람이 저렇게 잘 아는구나’ 하고 반성을 했다. 그래서 우리 전통건축에 대해 공부하고 외국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공기의 흐름만으로 팔만대장경을 800여 년간 좀 하나 먹지 않고 보존해온 해인사 장경각의 경이로움도 알려줬다. 침대나 소파 같은 무거운 고정식 가구가 자리를 차지하는 서양식 방이 아니라,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우리 한옥 방이 가진 효율성과 풍미를 알게 된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1973년 말 돌아온 한국은 아파트 투기 광풍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생존권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없는 사람들의 거주권은 어디서도 이야기되지 않았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40년이 흘렀다.

○ 땅콩밭
지난해 상반기 건축계의 이슈는 ‘땅콩집’이었다. 두 가구가 한 필지에 두 채의 집을 붙여 지었는데 비용이 한 채당 땅값까지 합쳐 3억 원대였다. 서울 도심 중형 아파트 전세금으로 자기 집을, 그것도 마당이 있는 주택을 갖게 됐다. 그 주택을 구상하고 설계해 지은 이현욱 씨는 바로 김원의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소속 건축가였다. “제가 우리 사무실 사람들한테 집 크게 지으면 안 된다, 투기하면 안 된다,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만날 그렇게 하다보니 땅콩집이 나왔어요.”

거기서 더 나아가 김원은 ‘땅콩밭’을 만들고 있다. 그가 40년 동안 꿈꾸던 생태공동체다. 30가구가 한 곳에 모여서 같이 사는 실험에 들어간 것이다. 이미 1단계로 땅콩집 서른 채를 지어 입주를 끝냈다. 공동텃밭을 만들었고, 서른 가족이 차 다섯 대만으로 서로 나눠 타는 걸 시도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땅콩집에 열광했는지 압니까? 그동안 아파트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간 그의 머릿속을 뱅뱅 돌기만 하던, 자그맣고 효율적이면서도 경제적 부담이 덜 드는 집을 만드는 일이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세상이 바뀌어 간다고 했다.

■ 김원은…

김수근 김중업을 잇는 건축가 그룹의 선두주자였다. 독립기념관 터 선정 및 마스터플랜 작성, 국립국악당, 통일연수원, 남양주 영화종합촬영소 설계와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한 백남준 비디오아트 ‘다다익선’의 구조 설계도 했다.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맞아 ‘다다익선’이라는 책을 냈다.
[펌] 자연 속에서 홀로 살기, ‘푸른 시냇물이 눈물처럼 흘러’

http://ecotopia.hani.co.kr/55109

강원 양양 산속에서 홀로 6년 자연 사색 결과물
다람쥐 때문에 밤 못 줍고, 개구리 때문에 길 못 가고…자연은 우리에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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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세파에 시달리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골에서 살아 봤으면”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짧은 여름 휴가나 여행을 통해 겉핥기로 자연을 맛보기라도 한다면 자연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깊어진다.
 
그렇다면 몇 년쯤 인적 드문 산속에 작은 집을 지어놓고 홀로 텃밭을 일구며 자연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생활을 하면 어떨까. 막상 실천에 옮기려면 쉽지 않은 이런 결단을 내려 강원도 양양의 산골짝에 숨어든 수필가 고충녕씨가 6년여 동안의 사색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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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스푼
   고충녕 지음/ 어문학사/1만3000원

“차 한 잔 한숨 한 스푼, 술 한 잔 눈물 한 스푼’이란 부제가 달려있는 <한 스푼>을 읽노라면 자연으로 들어가려면 벗어놓아야 할 것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물건에 대한 욕심은 그 하나이다.
 
알밤에 관한 이런 일화가 있다. 자신의 밤이지만 그는 다람쥐가 겨울 식량으로 모두 비축한 다음에야 알밤을 조금 챙기는 소심한 농부이다. 그런데 오지에도 밤을 따가려는 사람이 종종 나타난다.
 
창밖에서 부르릉거리던 차량 엔진 소리가 이유도 없이 뚝 멈추거나 인적이 언뜻거리면 난 상황을 쉽게 짐작하고 천천히 채비를 한다.”(14~15쪽)
 
이런 상황이 닥치면 그는 미리 골라둔 알밤 한 되 가량을 비닐봉지에 담아 서리꾼을 맞는다. 두 명이면 두 봉지, 세 명이면 세 봉지. 소리 지르고 욕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그들의 양심을 되찾게 하는 지름길임을 그는 번번이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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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전을 둘러싼 갈등이 심하다. 자연은 종종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 된다. 악착같이 파괴하려 하고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갈등이 적지 않게 일어난다. 이때 자연은 무슨 신앙처럼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거나 아무런 화폐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처럼 취급받는다. 그가 한 농부와 벌인 어느 ‘갈등’에서 해법의 단서를 찾는다.
 
그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봄이면 논에서 꼬물거리는 올챙이를 관심 있게 들여다 본다. 그 논은 ‘이 서방’이란 농부의 것이다. 어느 여름, 그의 올챙이는 논에서 떼죽음할 처지에 놓였다. 계곡물 유입을 막아 논의 온도를 높여야 벼가 잘 자란다는 농부 이 서방의 오랜 경험에 따라 산에서 유입되는 물길을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급한 김에 물길을 막은 돌멩이를 치워 올챙이를 살렸지만 오래지 않아 이 서방은 물길을 다시 막는 일이 벌어졌다. 이 ‘환경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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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죽는 게 자연계의 엄연한 흐름일지라도 죽음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일단 산 목숨은 구하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과 “농부들에게 제 논에 물대기는 제 몸의 피돌기와 같은 생리적 중요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맞부닥쳤다.
 
‘은밀하게 물길을 뚫어야 하나?’ 고민하던 그에게 뜻밖의 간단한 해결책을 이 서방이 실행에 옮겼다. 그는 주먹 만한 돌 대신 그 절반 크기의 돌로 물길을 막아 올챙이가 살면서도 벼의 활착도 막지 않는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0과 1, ‘이다’와 ‘아니다’로 세상을 가리는 디지털 세상에 물들었는지를 깨달았다. 이 서방에겐 따스한 ‘아날로그 방식’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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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고 시골에서 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반딧불이를 볼 기대에 부풀었던 논에 어느 날 농부가 덜컷 농약을 치는 일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비오는 어느 날 바다를 보고 싶어 나선 트럭 앞 도로에 줄지어 늘어선 개구리를 본 그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런 화풀이와 함께.

참고 참은 끝에 오늘, 한가로울 줄만 알았던 오늘이 하필이면 개구리 장날, 망할 녀석 개구리 놈들은 부디 잘 먹고 잘 살아아!”(145~147쪽)
 
산골 생활은 외롭다. 그래서 그는 내면의 또 다른 자기와 종종 대화를 나눈다.

소나무가 왜 늘 푸른지 알아?”
“바람이 불면 바늘잎 서로가 서로를 정신없이 찌르느라 멍들어서 그래!”
“그럼 하늘이 왜 푸른지는 알아?”
“사람들이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릴 때마다 먼저 하늘을 아프게 찔러서 멍들어서  그래!”
“그럼 이건 어때? 개울물이 왜 푸른지는 알지?”

“그건, 내 눈물이야!”
 
고충녕씨는 한겨레 생태환경 전문웹진 <물바람숲> 자유게시판에 근황과 생각을 담은 글을 종종 올리고 있다.
[펌] 조기교육 no! 사교육도 no! 국내 토종 고등학교 출신 최장현의 하버드대 입학기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2/2012071201890.html?newsplus
중산층 가정, 맞벌이 부모, 외국 한 번 나가보지 못한 평범한 아이가 오직 자신만의 공부법으로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 그뿐 아니다. 삼성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꿈까지 이뤘다. 최장현 군이 밝히는 백만 불짜리 공부비법.

최장현 군은 하버드대학 입학에 앞서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있는 아이비리그의 전통 명문 프린스턴대학에 수시로 합격했다. 그는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지난 4월,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입학 전 예비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난생처음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대학을 꼼꼼히 둘러본 끝에 장현 군은 하버드대학을 선택했다.

“원래는 프린스턴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두 대학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마음이 바뀌었죠. 실제로 두 대학은 환경이나 분위기가 모두 극과 극이었어요.” 한적한 전원 속 프린스턴대학이 각자의 학문을 차분히 공부하는 분위기라면, 화려하고 활기찬 캠퍼스 속 하버드대학은 커뮤니티가 활발한 거대한 집단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가 하버드대학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개방적이고 활동적인 성향을 가진 교수진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 명문대를 두 군데나 합격한 장현 군의 합격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내신 4.95/5.0점, SAT(미국대학입학자격시험) 2380/2400점 등 만점에 가까운 미친 스펙, 국가대표 디베이트(토론) 팀으로 남아공 세계 챔피언십에 출전해 개인 부문 2위로 입상한 놀라운 영어 실력. 하지만 무엇보다 장현 군이 하버드대학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결정적 비결은 차별화된 자기소개서에 있었다.

“저만의 독립적인 면을 부각시켰어요. 한국 학생은 부모님께 의지한다는 편견이 있거든요. 영어나 미술 등 관심 분야를 스스로 공부했던 과정을 설명했어요. 흥미를 갖고 있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썼고요. 예를 들어 요리에 대해 쓴다면 시작하게 된 계기, 요리가 내게 끼친 영향, 그 활동을 통해 배우게 된 새로운 가치 등을 설명했죠. 지원서의 공간은 제한적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저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충분히 고민한 후에 하나씩 풀어 썼습니다.”

하지만 하버드대 합격도, 삼성장학회 장학생 선발도 현실이 되리라고 예상하진 못했다. 장현 군은 아직도 수화기를 든 채 말없이 엉엉 울었던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사실 저는 하버드대 합격 소식보다 장학생으로 선정됐을 때가 더 기뻤어요. 학교에서 전화를 받고는 곧장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5분 동안 목 놓아 울었던 것 같아요. 설명할 수 없죠. 그때 그 마음은.”

조기교육보다 ‘프로정신 & 밸런스’장현 군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신동이었는지, 조기교육을 받았는지, 영어는 얼마나 일찍 시작했는지 등등.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부 NO. 될성부른 나무도 이젠 떡잎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
“신동 얘긴 못 들었죠. 한글도 네 살 넘어 깨우쳤으니까요. 오히려 외할머니가 글 배우는 게 너무 늦는다면서 어디 데려가 보라고 하셨대요.(웃음) 영어 조기교육도 못 받았어요.학교 입학할 즈음 학습지를 통해 알파벳을 배운 게 처음이었죠.”

그럼 타고난 두뇌가 좋은 편일까. 역시 NO.
“굳이 선천적 두뇌와 후천적 두뇌로 나눈다면 타고난 머리는 30%, 후천적 노력은 7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오히려 머리는 후천적으로 공부하면서 더 좋아졌어요.”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두 부모님께 물려받은 예술 감각이 그것. 부모님이 촬영한 캠코더 속 어린 장현 군은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타고난 게 있다면 미술 감각일 거예요. 부모님께서 산업디자인 쪽 일을 하셨는데, 조기교육이 있었다면 풍부한 문화생활을 제공해주신 거예요. 글자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제가 무언가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데려가주셨죠. 가끔 제가 어머니곁에서 미술 작업하시는 걸 보고 있을 때면 ‘그래, 너라면 무얼 고르겠니?’라고 물어보셨어요.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셈이죠.”

장현 군은 줄곧 자신의 부모님을 평범하게 묘사했다. 하지만 그가 꿈을 이루기까지 핵심적 바탕이 된 모토와 신념, 가치관 등은 모두 부모님의 교육 방침에서 나온 것이라 믿고 있었다.
“부모님께 배운 최고의 가치는 프로정신과 밸런스예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일. 그게 바로 부모님께 배운 프로정신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장현 군에게 어떤 가치에 대해서도 가르치지 않고 그냥 보여주었다.

40대 중반인 어머니는 회사의 중역임에도 야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야근을 하고, 휴일에도 필요하면 일을 한다고. 어떻게 보면 워커홀릭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책임감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육이었다. 한편 아버지를 통해서는 균형의 중요성을 배웠다.
“아버지는 엄마만큼 모든 일에 완벽주의는 아니에요. 대신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균형 잡힌 교육을 받은 장현 군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창 시절 내내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인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도 명확하게 갖고 있었다.
“공부는 제가 해야 되는 일이니까요. 회사원들에게는 주어진 회사 일이 있듯이 학생이 책임져야 할 일은 공부잖아요. 저는 공부가 프로의식을 최대한 발휘해서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공부는 선생님이라는 상사에게, 혹은 나 자신이라는 상사에게 검사를 받아야 하는 나의 일이죠.”

철저한 계획과 자기관리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일매일 똑같은 계획을 반복하기보다는 아침마다 계획을 세우고 하루 동안 그것을 완벽하게 이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예를 들어 ‘오늘은 생물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몇 단원부터 몇 단원까지 읽고 필기할 건지 아주 디테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게 좋아요.

저만의 이런 방식은 공부뿐 아니라 체력관리에도 적용됩니다. 운동에 투자하는 시간이 공부하는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저는 고등학교 입학 후 매일 운동하며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썼어요. 러닝머신을 하루에 5~6㎞ 이상 뛰었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니 땀을 흘린 만큼 전체적인 몸의 컨디션과 건강이 좋아지는 기분이더라고요. 집중도 더 잘되고요.”

내신 만점 관리법 61 수업시간에 액티브하게 들어라 여기서 ‘액티브(active)’란 수업을 영화 보듯이 흘려듣지 말고, 두뇌를 활기차게 활용하며 들으라는 뜻이다. 즉, 하나의 개념을 알게 되면 파생되는 또 다른 소개념이 무엇인지, 내가 모르는 부분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역동적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

2 수업시간에 집중하자 수업시간 자체가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수업시간에 자고는 따로 공부하겠다는 학생은 백발백중 내신 관리에 실패한다. 오히려 수업을 잘 집중해 들어서 교과 내용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으면, 나중에 혼자 공부할 때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3 꼼꼼함으로 승부하라 내신 점수가 좋은 학생은 대부분 꼼꼼하다. 수행평가의 제출기간 및 요구사항을 조목조목 체크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업시간에 교사가 “이 문제 나올 수 있다.” 등의 힌트를 던지면 놓치지 않고 체크해두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4 교재는 하나만 파라 문제집을 너무 여러 개 동시에 보면 나중엔 개념 자체가 헷갈려 혼돈스러워진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잘 맞는 교재가 있다. 자기와 가장 잘 맞는 교재를 발견한 뒤 교과서와 연관시켜 무한 반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5 시험시간에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말고 복습하라 시험시간이 되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며 1단원부터 필기를 다시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이건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시험기간은 그간 배운 것을 정리하고 내 것으로 흡수하는 시간이란 걸 잊지 말자.

6 학원? 과외?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라 사교육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지만, 정답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즉, 자신의 공부 취향 및 성격 등을 고려해 맞는 공부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적으로 자습하는 체계가 맞는다면 혼자 공부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공부해야 이해가 잘 된다면 학원이나 과외도 나쁘지 않다.

모범생? 여자친구도 사춘기도 있었다
흔히 전국 1등생, 명문대 입학생은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공부만’ 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조심스레 물어봤지만, 대답은 의외로 So Cool.
“여자친구도 있었고, 지독한 사춘기도 있었어요.”
안경 너머 찡끗 웃는 모습이 매력 포인트인 장현 군에게 이성 친구들에게 인기가 좀 있었을 것 같다고 하자, “아뇨. 성격이 까다로워서요.”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고 3때 한 살 어린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당시 저는 입시 때문에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생각만큼 잘 안 챙겨준다 싶은 서운함에 결국 헤어지게 됐죠. 고등학교 내내 고민도 많았어요. 그중 가장 큰 고민거리는 미국 대학의 비싼 학비였죠.”
학비가 국내보다 비싸다 보니(1년에 5만 달러 이상) 아무리 공부해도 결국 못 다니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삼성 장학생이 되어 2억 원이 넘는 장학금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하다. 이제 8월이면 장현 군은 하버드의 푸르른 캠퍼스를 누비게 된다. 전공으로는 철학, 부전공으로는 미술을 선택했다. 학문과 문학, 예술을 넘나들며 창조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장현 군은 마지막으로 미국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요즘 유학 붐이 너무 크게 이는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그러나 세 가지 스텝이 있어요. 첫 번째, 유학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요. 유학을 고려했다면 이게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스스로를 깊이 탐구하고 스스로에게 확신이 서야 해요. 두 번째,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면 뚜렷한 계획과 목표를 설정해야 해요.

무작정 부딪쳐보자는 마인드는 위험해요. 유학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그에 대한 방향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무엇보다 국내 대학과는 과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가서 방황하고 난 후에는 늦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美 명문대 가는 영어 접근법 3
1 최대한 재미있는 영어에 노출돼라 나 같은 경우는 미드 보기를 좋아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드를 보면 스크립트를 뽑고 그 안에 적용되는 표현을 익히려고 애쓰는데,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미 자체가 반감되면 그 학습법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미드를 그냥 흘려 보되, 집중해서 재미있게 본다. 놓친 표현이 있더라도 초조해하지 말자. 반복해서 듣다 보면 감이 온다.

2 살아 있는 영어를 배워라 많은 학생들이 단어장에 매달리며 공부하지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스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원서로 된 교과서나 교재를 쓰는 방법. 영어를 외국어가 아닌 언어 자체로 익히게 된다.

3 읽기, 쓰기, 말하기 등을 유기적으로 공부하라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큰 오류 중에 하나가 리딩, 라이팅, 스피킹 등을 따로따로 떼서 공부하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활동은 유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감각을 연결해서 깨울 필요가 있다. 나는 영어로 토론활동을 했는데, 피력하고 싶은 바를 쓰고 말하고 다른 이의 주장을 듣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영어를 유기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