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8일 금요일

[펌] 우리가 버린 삶이 우리를 버렸다



20121203_9.jpg» 한겨레 자료 사진.
전철에는 긴의자에 일곱 명이 앉습니다. 그 중에 다섯 명은 스마트폰을 들어다 보고 있지요.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만 밀고 찍고 긁고 오무렸다폈다 하는데, 혼자서 헤죽헤죽 웃기도 합니다. 내 옆의 아줌마도 뭔가 열심히 들어다보고 있길래 슬쩍 커닝을 했더니 화투를 하고 있었습니다.ㅋㅋ

스마트폰을 들어다 보는데 하루에 2시간 이상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하루 눈 뜨고 사는 게 열 일곱 시간 정도인데 그 중에 두세 시간을 스마트폰에 매여 산다면 이건 참, 거시기한 삶입니다.

인간의 삶을 이렇게 철저하게 지배할 수 있었던 도구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농노시대의 노예는 강제로 팔리고 끌려 다녔지만, 스마트폰은 제 돈 쓰면서 자발적 노예로 따라다니는 겁니다.  고리의 삶입니다. 코뚜레는 소의 코를 꿰어 두는 고리이고 착고(搾拷)는 발을 묶어놓는 고리입니다!

사라져버린 풍경들

얼마 전에는 전철의 의자에 앉아 있던 중, 어떤 아가씨가 내 앞으로 다가왔는데 묵직해 보이는 쇼핑백을 두 개나 포개들고 있었습니다. 내 무릎에 놓아주려고 쇼핑백을 당겼습니다. 아가씨는 깜짝 놀라며 잡아채듯 획 돌아서 맞은 편 쪽으로 가 서더니 돌아보며 눈을 흘겼습니다. 아주 민망스럽더라고요.

아마도 수상쩍거나 정신이 좀 그런 아저씨로 여긴 것 같습니다.  내가 문제인지 그 아가씨가 문제인지, 아니면 문제로 보는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고 뭐, 신고당해서 끌려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버스나 전철 같은 대중교통에서 자리에 앉은 사람이 옆에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이나 물건을 무릎에 받아주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고, 모른 척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친절을 베풀어서는 안 되는 시대입니다.

생활 속에서 많은 것이 사라졌습니다. 만년필도 사라지고 편지지도 사라지고 점심 도시락도 사라지고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일도 볼 수 없습니다.
사라져버린 것들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노동과 전업주부와 대가족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젊은이들의 노동능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힘을 쓰지 못합니다. 

모두가 머리만 쓰고 공부만 하고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못하나 박는 것도 이삿짐 묶고 나르는 것도 안됩니다.  흙 위에서의 농사일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 

“땀을 흘려야 먹고 살리라.”

아무리 기계화 자동화 시대라고 하지만 의식주에 필요한 것들은 당연히 몸을 움직여 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내게 필요한데 내 손으로 하지 않는다면 결국 누군가의 노동을 빌려야 할 것이다.-톨스토이-”

가정에서나 사무실 시설 가운데 뭔가 잘못되었을 때 팔을 걷어붙이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의례히 전문 업소에 연락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효과적으로 여깁니다. 이제는 학교의 청소 조차도 학생들이 하지 않습니다.

“땀을 흘려야 먹고 살리라” 하셨는데 나는 먹고 살긴 하지만 땀은 흘려주는 전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대상은 점차 줄어들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는 대상은 늘어나기 때문에 갈수록 현금 지출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소비문화의 기술상품들은 통신기기와 사용 요금 같은 새로운 지출을 꾸준하게 만들어 내고 증가시킵니다. 어쨌거나 돈이 많이 필요한 생활입니다. 우리 시대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비결은 힘든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나 할 수 없는 자격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그래서 경쟁하고 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 공부하는 이유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표현하자면 ‘적게 일하고 많은 연봉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내 자식도 그런 자격증과 직업을 갖게 해주는 부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과외를 시키고 명문대를 바라보고 유학을 보냅니다.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 훈련을 시키는 거죠. 공부만 최소한 20여 년을 합니다. 그 비용이 대졸까지 1억이 넘는다는 계산입니다. 왜 서민들이 그런 경쟁에 끼어드는지 아주 바보같은 삶입니다.

적게 일할수록 많이 받는 월급

그런데 너도나도 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고학력 사회가 되어 과거에는 고졸자가 하던 관공서, 은행창구 업무를 대학졸업자가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전화 받고 서류복사하고 심부름하는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에 대학 졸업장이 왜 필요한가? 아파트 경비원, 구청 미화원, 배달원, 가게 음식점 운영, 운전기사, 외판원 등을 하는데 굳이 학사증이 왜 필요한가요?

그것마저도 자리가 없어 고학력 백수가 한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미국의 오바마도 못 푸는 일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무슨 재주로 푼다는 겁니까?

이건 인류 문명의 퇴보가 하늘을 덮고 있는 현상인 겁니다. 장사꾼들의 마케팅에 속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는 딱 필요한 만큼만 하면 됩니다.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업을 얻지 못해 결혼도 미루고 다시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닙니다. 이건 낭비지요.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돈 쓰는 일, 학교 다니는 일 외에는 딱히 없다는 말일까요?

어떤 직업의  사람은 필요한데 능력과 자격을 가진 사람의 수가 적다면 보수를 많이 줍니다.  법조인, 의사, 회계사,  조종사, 엔지니어, 금융 투자전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농업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농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 직종이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도 적은데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생활보장도 되지 않고 귀하게 보지도 않습니다.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담하는 3D업종(힘들고, 어렵고, 더럽다는 뜻)들도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아줌마’가 없다

직접 몸을 쓰고 땀 흘리는 일은 못한다고 생각하고 머리 써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통하고 서비스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은 잘 한다고 여기는데 그런 꾀부리는 일에만 사람이 몰리니까 일자리는 적고 봉급은 오르지 않습니다.

가정의 수입이 적은데 학원비 통신비 등 생각지도 않은 지출은 새롭게 늘어나니까 엄마들도 모두 돈을 벌려 나섭니다. 주부가 가정을 꾸리고 가용을 운영하고 육아와 교육을 담당하는 일은 사실상 남자들의 육체노동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일인다역(一人多役)이어서 전업주부(專業主婦)라고 하지요.

결혼은 했고 아기는 출산했는데 그런 일을 할 엄두가 안나니까 아기 키우는 일은 친정이나 어린이집에 맡기고 자신은 돈을 버는 일에 나섭니다. 그게 더 쉽거든요. 아기가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고 크는 것은 보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상이 아니지요. 학교 공부를 많이 하면서 노동이 사라졌고 전업주부가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가정에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세탁이건 청소건 주방일이건 모두 기계에 의존하고 살아갑니다.

전업주부의 경험과 능력이 자녀들에게 전수되지 못해서 신세대 젊은이들은 김치도 고추장도 담그지 못하고 친정집에 기생하여 삽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으로 규정되어 자녀에게 가사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공부가 끝나려면 30세가 가까워야 하기 때문에 밥하고 빨래하고 김치 담그는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이 결혼까지 이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나 자식은 못하지만 배우자나 며느리는  가사일 정도는 기본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 그런게 어디있어요! 

수녀원에 입회하는 젊은이들 역시 손으로 하는 일을 못합니다. 나이는 30세 가까워도 일하는 것은 중학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소임도 모두 머리 쓰고 사람 만나는 일만 선호합니다. 학교 교실에도 따로 청소부를 고용하는 걸 보면 머지않아  수녀원에도 파출부를 부르는 시대가 올 듯 합니다. 

대가족 해체의 비극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어머니는 가정을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아내이며 며느리이며 어머니요 가정부, 요리사, 세탁부, 집안 살림꾼, 자녀 교육자, 남편 내조자 돌봄이, 아픈 가족의 간호사, 자녀문제로 학교에 불려가 야단맞는 사람,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하면 돈 벌러 나서야 하는 사람, 지역 동네와 일가친지의 초상, 결혼 등 집안의 애경사를 감당하는 사람... 이것이 어머니이고 여성이며 전업주부이고 ‘대한민국 아줌마’의 모습이고 힘입니다.

전업주부가 사라졌다는 것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 심각한 징표입니다.  우리시대에 사라져버린  다른 하나는 대가족제도입니다. 농경사회가 도시 산업화 사회로 바뀌면서 대가족이 붕괴되었습니다. 대가족이 분해되면 핵가족으로 남아야 하는데 가정 자체가 해체되어 버린 것입니다. 독신, 불임, 이혼, 기러기, 주말 가족으로...

아침에는 자녀의 0교시 등교와 부부의 출근 시간이 달라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고, 점심은 학교 급식과 직원 식당에서, 저녁은 회식으로 학원 구내식당으로...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데 가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건 중병이 들어도 아주 온몸에 전이된 치유불가의 상태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울증과 자살이 세계 최고의 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도 당연한 귀결일 런지 모릅니다. 두려운 재앙의 시대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대가족 제도의 해체는 인간의 삶을 상품화 시켜버렸습니다. 신혼 젊은이는 임신인지 아닌지를 본인이 알지 못하고 의사가 임신 몇 주라고 알려줘야 비로소 임신입니다. 아기를 가졌으면 때가 차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인데 한 달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갑니다.

“왜 가느냐?” “오라고 한 날이니까 간다!” 이건 정말 이상한 삶입니다.

아기를 낳을 때도 병원, 예방접종, 툭하면 소아과... 건강검진... 요람에서 무덤까지 병원에 매달려 삽니다.  임종 무렵은 중환실이나 간호사나 간병인에게 맡겨지고 가족들은 멀리 있습니다. 모두 돈벌러가고 빠쁘기만 해서 같이 있어줄 가족이 없습니다. 종합병원 입원실이나 중환자실은 상품 진열대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버렸던 삶

대가족이 살아있던 농경 시대에는 집안 어른이 입덧이나 증상을 보고 임신을 알려주고 아기를 받아주고 소아의 응급처치를 해주고 아프면 민방이 있고 어려운 문제에 집안 어른들이 상담역이 되어줍니다. 일자무식이라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사업에 넘어져 고향을 찾아와도 언제나 환영하며 함께 일할 농사라는 일자리가 있고 죽을 때에는 온 가족이 호스피스가 되어 줍니다. 대가족 제도보다 더 인간답게 사는 길은 없습니다.

문명사회에서는 땀 흘리지 않고도 생산할 수 있고, 내가 직접 생산하지 않아도 머리를 굴리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속삭임에 넘어가 우리는 노동과 대가족 제도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렸다.’는 영국의 속담처럼 현대인의 영혼이 함께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버린 것이 우리를 버렸습니다. 우리가 개인의 자유와 안락을 구하여 노동과 가족과 공동체라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버렸기 때문에 우리들의 영혼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인간들의 이기적 삶이 보물의 삶을 파괴시켜버렸습니다. 수만 년 이어온 대가족제도의 아름답고 지혜로운 자연의 삶이 불과 수십 년의 소비문화에 파괴당하고 만 것입니다. 자연은 만물의 어머니이며 인간 지성의 스승입니다. 우주 만물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자연과 그 질서가 먼저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을 위해서 자연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이 자연의 틈새에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사는데 있습니다. 땀 흘리는 노동으로 먹고 사는데 창조성이 있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 육체노동의 부활에 있습니다. 가족과 이웃들이 작은 사회를 이루면서 자급적 생산과 자족적인 협력의 삶이 자연이고 생태의 삶이 됩니다. 대가족 제도가 복구되어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공동체, 다시 찾아가는 오래된 미래

기술시대에서 해체되어 버린 노동과 대가족 제도를 복구시킨다는 것은 사실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노동과 대가족을 복구시킬 유일한 가능성으로 단 한 가지의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마을은 간난 아기부터 노인까지 대가족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고 시스템 자체가 대가족 제도입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함께 사는 삶입니다.

대가족으로 사는 가운데 농업을 숭상하면서 노동하는 삶에 진정한 건강이 있고 희망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고백입니다. 공동체는 우리 인류가 어떻게 진보해 나가야 하는가? 에 대한 해답이자 모델입니다. 

http://well.hani.co.kr/12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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