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카피로부터의 잠언

[냉탕과 열탕사이] 제34장 [자신부터 사랑하라]

[매거진t 2007-01-24 16:30]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카피로부터의 잠언

지난주, 내가 진행하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연애 상담을 요청한 한 남자 청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 남자는 자신의 힘든 상황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태훈씨, 언젠가 방송에서 사랑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셨죠?”

뜬 금없는 질문에는 이런 뜻을 담겨 있었다. 자신은 지금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지만, 바로 그런 것이 사랑이 아니겠냐고. 내게 동의를 구하는 일종의 반문이었던 셈이다.

“맞 습니다. 때로 사랑은 논리적이지 못하죠. 그렇기에 아프고,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사랑이 다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선 틀어진 논리를 세우고 지극히 이성적인 사랑 방식을 택해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 슬프게도 내 대답은 그에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사랑은 원래 아픈 것, 맞나?

사랑은 질주다. 자기를 통제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지는 말 것!

사 랑은 자기 살을 깎아내 상대를 살찌우는 괴상한 놀이가 아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어느 날, 진짜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되는 건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우린 아파야 진짜 사랑을 하고 있다는 묘한 착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비극적 사랑을 신화화시키는 드라마, 영화, 소설이 가져온 일종의 폐해이다.

최 근 TV에 등장한 인상적인 광고가 있다. 연작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광고의 메인 카피는 “나는 나를 좋아한다”다. 매일 다른 옷을 입기 위해 청바지의 밑단을 찢고, 겨울 바다에 서핑보드를 든 채 서 있으며, 도심에서 낙하산을 타고 차도를 자전거로 질주한다. 그리고 항상 광고의 끝에는 동일한 카피, ‘나는 나를 좋아한다’가 나온다. 무료한 오후를 TV와 함께 보내던 어느 하루, 이 광고는 내게 많은 생각을 들려주었다.

우 린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고, 그 사람에게 특별한 느낌을 얻게 되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이 격렬한 감정의 폭풍은 오직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전을 세우게 만들고, 명백한 목적의식을 가진 채,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사랑이란 이름의 이 맹렬한 레이스에서 우린 때때로 속도감을 잃고, 곡예에 가까운 난폭운전을 감행하고, 또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타이밍을 놓치곤 한다. 도로 표지판의 속도 제한 표시나, 신호등이 무시될수록 더 강렬한 사랑이라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 레이스의 끝에는 결국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작은 추돌 사고라면 목 뒤를 어루만지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지만, 자기 통제를 벗어나 운에 맡겨야 하는 한심한 상황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존감을 지키며 사랑하기

어느 여성으로부터 이런 물음을 들었던 적이 있다.

“제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까요? 하지만, 전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중 요한 요점은 이런 것이다. ‘나는 나를 좋아해야 한다.’ 사랑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버린 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랑이라는 괴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간택해달라고 눈물을 보이는 것은 운전 능력을 상실한 채, 기도로 사랑을 얻겠다는 순진한 종교인의 자세가 될 뿐이다.

외 국어를 배우게 되면, 항상 처음으로 알고 싶어하는 표현이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어로는 “I Love You”, 불어로는 “Je t’aime”, 일본어로는 “와타시와 아나타노 고토가 아이시데이마스”. 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은 가르쳐주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의 반복이 되겠지만, 사랑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랑의 시작은 “나는 나를 좋아하며, 나는 나를 사랑한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이 한 몸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순애보는 그만두자. 그건 사랑이 아닌 삼류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온 세상을 얻는다 할지라도, 나를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경에 나오는 이 구절이야말로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의 잠언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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