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생각이 '논픽션'을 만든다

≪커넥티드≫의 저자 대니얼 앨트먼. 하루 동안 각국 언론 보도와 정부기관의 발표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조선일보 DB

381일 동안 예수처럼 산 사나이

중국제품 사용 안 하고 지낸 4인 가족

집으로 가는 길…비명으로 물든 한 소년병의 기억

국경을 세번 건넌 여자…자유 찾아 사선 넘은 경험담

스타벅스가 내 인생을…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


"내 자신의 몰상식을 견딜 수 없었다."

패 션잡지 〈에스콰이어〉 편집자 A J 제이콥스(Jacobs)가 3만3000쪽 분량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A부터 Z까지 모조리 읽기로 한 이유다. 그는 자신의 완독 기록을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원제 The Know-It-All·김영사)에 담아냈다.

저 자는 브리태니커에서 읽은 항목과 자신의 일상을 연결해 톡톡 튀는 문체로 서술하고, 고대·중세 철학자들에게서 고매함을 벗겨내 그들을 경쾌하게 묘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자는 37세, 여자는 18세에 결혼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자신이 그랬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가련하게도 사팔뜨기 여성에게 성적으로 집착했다"는 구절은 백과사전을 뒤적여 확인한 사실이다. 그는 그런 무모한 도전을 벌인 이유를 "저서를 24권이나 낸 법조인 부친 등 가족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기인이 쓴 ≪성경 가르침대로 살아 본 한 해≫(원제 The Year of Living Biblically) 역시 '이런 것도 논픽션 소재가 될 수 있구나' 무릎 칠 상상력을 선보인다. 종교에 무심했던 그는 예수처럼 수염을 기르고 381일간 박애와 기도를 실천한다.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사마리아인, 동성애자, 독실한 크리스천 등을 만난 뒤 "신이 존재하건 안 하건, 삶은 신성하다"고 결론 내린다.

이런 '기획성 실험'이 논픽션으로 진화한 사례는 또 있다.

A J 제이콥스는 ≪성경 가르침대로 살아 본 한해≫를 쓰는 동안 예수 같은 외모를 하고 박애를 실천했다(왼쪽). 시에라리온 소년병 이스마엘 비아는 그 시절 학살과 고문의 악몽을 되살린 ≪집으로 가는 길≫로 큰 반향을 불렀다.

미국 프리랜서 기자 사라 본지오르니(Bongiorni)의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원제 A Year Without Made in China·엘도라도)는 남편과 자녀까지 4인 가족이 2005년 한 해 동안 '재미 삼아' 중국 제품 없이 지내 본 경험담이다. 저자는 중국산이 신발·믹서·전기청소기·쥐덫·선글라스부터 크리스마스 가족 파티용품에 이르기까지 소리 없이 집안을 점령했음을 경험한 뒤 "세계화의 실상을 깨달았고 신중한 소비자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고 자평한다.

사실에 대한 진솔한 고백은 보편적 심성에 호소하고, 이는 곧 논픽션의 힘이 된다.

12세 시에라리온 소년병 출신 이스마엘 비아(Beah)의 체험담 ≪집으로 가는 길≫(원제 A Long Way Gone·북스코프)은 국제사회에 소년병 문제를 환기시킨 화제작이다.

유니세프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10여 년 전 참혹한 기억을 풀어낸 이 책은 인정 넘친 시에라리온 농촌 마을이 학살·폭력·고문·비명으로 가득한 악몽의 땅이 돼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사 선을 넘어 자유를 향한 열망을 보여 준 강렬한 체험담은 국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탈북인의 자전적 기록인 강철환(40) 조선일보 기자의 ≪수용소의 노래≫(시대정신) ≪아 요덕≫(월간조선사), 탈북시인 최진이(49)의 ≪국경을 세번 건넌 여자 최진이≫(북하우스)가 대표적이다. 강씨는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렸고, 최씨는 북한의 억압된 생활상과 연변 땅에서 탈북인이자 무국적 여성으로서 흘린 눈물, 한국 정착과정의 역경을 사실적으로 전해 감동을 안겼다.

자기 치부를 숨김 없이 드러낸 논픽션이 베스트셀러가 되곤 한다.

예 일대 출신으로 유력 광고회사 JWT 간부였던 마이클 길(Gill)은 노년의 삶이 그리 꼬일 줄 몰랐을 것이다. 회사에서 해고된 데 이은 사업 실패, 불륜에 따른 뜻하지 않은 사생아 출생과 이혼, 뇌종양이 63세에 한꺼번에 몰려 왔다. 그는 뉴욕 맨해튼 스타벅스 매장에서 노동자 계급 출신 흑인 여성 매니저 밑에서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 바리스타로 재기한 사연을 담아 ≪스타벅스가 내 인생을 어떻게 구했나≫(원제 How Starbucks Saved My Life)를 냈다.

하버드 경제학 박사 대니얼 앨트먼(Altman)의 ≪커넥티드≫(원제 Connected·해냄)도 착안이 기발하다.

이 세계화 전문 칼럼니스트는 2005년 6월 15일, 하루 24시간 동안 각국 언론과 정부기관들이 쏟아낸 뉴스와 발표기사를 근거로, 전 세계 60억명 개인이 내린 결정이 어떻게 맞물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세계 곳곳의 하루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현장감 있게 꿰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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