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5일 월요일

[베이비붐 세대 재취업 전쟁] [1] "눈높이 낮추고 자격증까지 땄지만… 250전 250패"

3人의 '인생 2막' 도전기
제조업체 명퇴 53세 이성효씨
평생 해온게 관리직인데 나를 찾는곳 거의 없어기술이라도 있었다면…
디자인회사 퇴직 48세 심인보씨
나이 쉰 가까워지니 기업들 태도 달라져 40代 중반만 됐어도…
은행원 55세 김명수씨
11년간 5차례 명퇴 버텨 이번엔 어쩔 수 없어… 최선 다했기에 원 없다
작년 1월 사무용품 제조업체 J사에서 명퇴한 '57년 닭띠'의 베이붐 세대 이성효(53)씨는 지난 1년간 재취업과의 전쟁에서 '250전 250패'를 기록했다. 제조업 관리직은 물론 택배 기사며, 마을버스 기사까지 250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이다.
◆250번의 좌절
이씨는 고교 졸업 후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J사에 창립 멤버로 들어갔다. 23년간 회사가 자리를 잡고 커오는 동안 이씨도 3남매를 키우며 인천 연수구에 시가 3억원짜리 아파트(125㎡·38평)도 마련했다.
IMF위기 때도 그는 살아남았다. 그런데 2008년 회사가 일본 거래처와 단가 협상에 실패하면서 수출 물량의 70%가 끊겼다. 70명 중 이씨를 포함한 50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씨는 "관리직이지만 그간 안 해본 일이 없어 이내 재취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그는 구직 사이트와 지인들을 통해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J사에서 연봉 4000만원을 받았지만, 눈높이를 낮춰 지금은 2400만원까지 알아보고, 희망직종도 '관리직'에서 점점 넓혀 운전기사 자리까지 알아보고 있다. 용달트럭 기사라도 하려고 기계차 면허, 화물운송(용달) 기사 자격증, 대형차 면허를 땄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력서를 낸 250곳 중 면접 보라고 연락 온 곳조차 두세 곳에 불과했다.
항상 '나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이씨는 "하다못해 택배기사도 쉰이 넘은 사람은 안 쓰려 한다"며 "나는 한창 일할 나이인데 사회가 벌써 '퇴물' 취급한다"고 했다. 집에만 있기 거북해 등산을 다녔지만, 산 정상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이씨는 "기술이 있으면 재취업도 더 쉬울 텐데, 제일 쓸모없고 천한 직업이 '관리직'인 것 같다"며 "큰 욕심 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본격 은퇴를 맞은 베이비붐 세대의 재취업 상황은 급속히 악성화(惡性化)되고 있다. 40대와 50대 실업자의 실업급여 신규신청자는 5년(2005~2009) 사이 각각 209%(12만442명→25만2785명)와 223%(9만5238명→21만3912명)씩 두 배 이상 늘었다. 노동시장에 나온 일자리 하나당 구직자의 경쟁 배수는 50대(代)가 무려 11 대 1로, 20대(1.9 대 1)의 다섯 배가 넘고 있었다.
그나마 재취업에 성공한 55세 이상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경로도 정부·공공기관(15.8%)이나 민간 알선기관(10.9%)의 도움보다 친구나 친지 등 개인적 네트워크(47.2%)가 절대적이었다(노동연구원 2008년 조사). 우리 사회는 베이비붐 세대의 재취업을 위한 공적(公的)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 이성효씨는 지난 1년간 매일 2~3시간은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서 기업을 검색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결과는 250전 250패다. 그는“홀로 산에 올라 눈물을 훔치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40대와 50대의 차이
올겨울 한파가 심인보(가명·48·서울 여의도동)씨에겐 유달리 매서웠다. 재취업에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중견 식품회사에 들어가 12년간 근무하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옮겨 4년간 다녔다. 이후 건설디자인 회사로 옮겨 1년 반 근무하고 반년 전에 나왔다. 심씨는 곧장 여의도에 있는 중견전문인력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 전에 다닌 회사를 소개해준 곳이다.
그는 "불과 2년 전 일인데 그새 상황이 달라졌더라"며 "당시만 해도 40대 중반에 석사 학위가 있고 관리직 경험이 있으니 금방 연봉 6000만원짜리 일자리를 찾았는데 지난 6개월은 전혀 성과가 없다"고 했다. 언제 기업에서 연락 올까 싶어 항상 휴대전화를 끼고 다니지만 원하는 기업에서는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심씨는 40대와 50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심씨는 "나이가 쉰에 가까워지니 확실히 기업들 태도가 달라졌다"며 "한 달에 서너 건 면접 연락이 오지만 대부분 정수기 판매나 보험 영업사원 자리뿐"이라고 했다.

◆다섯 차례 명퇴 압박 버텼지만…
대형 시중은행 간부를 지낸 김명수(가명·55)씨는 1998~2009년의 11년간 5차례 명퇴 대상이 되고도 내내 버텼다. 그가 경력 18년차 일 때 IMF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은행은 하루 말미를 주고 "명퇴하든가 한직으로 가라"고 했다. 명퇴 대상자 400여명 중 안 나가고 버틴 사람은 김씨 등 6명뿐이었다.
그는 일선 업무에서 제외됐다. 본점 한쪽 사무실에서 '아무 일도 안 시키는 사람'으로 2년을 살았다. 김씨는 "힘든 일을 시켰으면 마음고생이 덜했을 텐데, 꼭 도를 닦는 것 같았다"고 했다.
2000년 다시 명퇴 대상이 됐다. 이번에도 버티자 은행은 그를 채권 회수 업무로 돌렸지만 만 7년간 꾹 참고 했다. 그는 "준비 없이 나간 선배들이 재취업을 못해 일 없이 지내고, 창업했다 명퇴금마저 까먹는 것을 보고 버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2006·2007년 두 차례 더 명퇴가 있었지만 김씨는 버텼다. 2008년 은행은 그를 시내 지점에 파견했다. 일선 업무에서 제외돼 영업 목표액(연봉의 120%)을 혼자 채워야 했다. 김씨는 이를 악물고 뛰어 지점 파견자 90여명 중 5위 안에 드는 실적을 냈다.
그는 작년 말 또다시 명퇴 대상이 됐다. 이번엔 '나이'였다. 이번에는 그도 "못나서 쫓겨났다는 소리는 안 듣고 박수칠 때 떠날 수 있으니 원(願)은 없다"며 받아들였다.
김씨는 중소기업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딸(27·회사원) 시집 보내고 아들(22·대학생) 공부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애들한테 말은 안 해도 마음속으로 '나는 장한 아버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동연구원 방하남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사회는 그동안 청년실업에 너무 매몰돼 있어 조기 퇴직 현상 등으로 인한 베이비붐 세대 재취업에 둔감했다"고 말했다.

☞ 베이비붐 세대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 도입 직전인 1963년까지 9년에 걸쳐 태어난 세대. 전체 인구의 14.6%인 712만명에 달하는 거대 인구 집단으로, 가장 빠른 1955년생이 올해 만 55세를 맞아 집단 퇴직을 시작한다. 교육비 부담과 내 집 마련 등으로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한 반면, 자녀들 부양은 기대하기 힘들어 ‘샌드위치 세대’로도 불린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25/20100125000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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