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5일 월요일

[베이비붐 세대 '2010년 쇼크'] [5·끝] "과거 빨리 털고 20~30년 몰두할 일 찾아라"

성공한 은퇴자들의 조언
은퇴자 5人이 전하는 "은퇴생활 성공하려면…"
목돈 저축 필요하지만 자기계발에 더 힘써야…
전문적인 취미 만들어 수입원으로 활용하길
시중은행 지점장이던 장준수(58)씨는 2006년 27년간 다닌 은행에서 "한직에서 정년을 채우든가 명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말미는 사흘,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3년이었다.
장씨는 명퇴를 택했다. "어차피 길어야 3년이라면 빨리 새 일을 찾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2001년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따둔 것이 새 인생의 발판이 됐다. 재무설계사는 금융상품 추천부터 상속 대비까지 다양한 재산 관리 업무를 해주는 직업이다. 그는 추가로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보험대리점에서 내준 사무실을 베이스캠프 삼아 고객을 찾아나섰다.
장씨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인데 초기엔 만날 사람이 없어 대리점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인을 찾아갔다가 반갑잖은 반응에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는 몇 안되는 고객이나마 시시콜콜한 불만까지 끈기있게 들어줬다. 목돈 관리를 맡기는 고객, 정기적으로 유료 상담을 받는 고객이 하나 둘 늘었다. 개인 고객이 확보되자 그는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지난해 수입은 상담료와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 등 5000만원이었다.
"명퇴 전 연봉에는 못 미치지만 꾸준히 수입이 있고, 할 일이 많아 늘 하루가 부족하다는 게 좋습니다. 현역일 때 자기 업무와 관련된 분야에서 나이 먹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두세요. 생소한 일에 도전하면 원래 그 일을 해온 이들에게 밀립니다."
대량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는 은퇴 후에도 1955년생은 평균 27년, 1963년생은 평균 34년을 더 살아야 한다. 대한은퇴자협회·행복한은퇴연구소·희망제작소 등이 '성공한 은퇴자'로 꼽은 사람들은 베이비붐 세대를 향해 "젊어서 저축한 돈으로 여든까지 먹고 사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영원히 현역으로 뛰라"고 충고했다.
전기보(52) 행복한은퇴연구소장은 "30·40대부터 자기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골라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하면 수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무작정 목돈 저축에 매달리기보다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게 성공한 은퇴자들의 공통점"이라고 했다.
봉사활동을 '제2의 직업'으로
서병수(64)씨는 은행감독원에 다니다 IMF 외환위기로 명퇴했다. 함께 나온 동료들이 산하기관에 들어갈 때 그는 서울 시내 한 복지관에 월급 140만원의 과장급으로 들어갔다. 다니던 성당 앞에 빈민촌이 있어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온 것이 '제2의 직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2003년부터는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도 땄다.
"분노와 허탈감을 털지 못해 병이 들거나 생활의 질서가 무너진 은퇴자를 많이 봤습니다. 빨리 과거를 잊고 20~30년간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장사건 취미건 뭔가에 몰입하면 그 순간은 세상사를 잊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게 행복이었구나' 싶고요."
건강 관리·취미로 행복해지기
송영록(57)씨는 말레이시아에 공산품을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하다 2007년 은퇴했다. 이후 말레이시아 관련 조언을 해주고 버는 돈(월 150만원)과 말레이시아 부동산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살림을 꾸리고 있다.
"은퇴 전 수입(연 6000만~7000만원)만은 못하지만 몸이 아픈 아내를 간병하면서 등산·전시회 관람·블로그 활동 등을 즐길 수 있어 만족해요. 자식에게 기대기보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정보 찾고 친구 사귀려면 인터넷도 꼭 배워야 합니다."
2004년 중앙 부처 과장으로 정년퇴직한 이득우(66)씨는 무보수로 민간 장학회를 운영하는 한편 마라톤으로 여가를 즐기고 있다. 그는 퇴직 3년 전 신문기사를 보고 하프마라톤에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6차례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매주 한 차례 마라톤 동호회에 나가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게 낙"이라며 "장학회 일과 마라톤 연습으로 활기차게 지낸다"고 했다.
취미를 새로운 수입원으로
조원희(64)씨는 서울 강북의 단독주택에 살면서 공무원 남편의 월급으로 네 딸을 길렀다. 취미로 소품 분재를 만들어온 조씨는 주민센터에서 동네 주부들을 상대로 분재를 가르치다가 2001년 의정부에 월세 55만원짜리 비닐하우스(214㎡·65평)를 임대해 화원을 냈다. 조씨는 "제자들 재료나 대겠다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했는데 첫달에만 소품 분재가 5000만원어치 팔려 깜짝 놀랐다"고 했다. 조씨는 10년째 꾸준히 억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조씨의 제자들 중에는 남편이 퇴직할 때 대비해서 배우는 주부가 많다. 지금까지 7명이 가게를 냈다. 조씨는 "식물 가꾸는 일을 정말 좋아해서 가게를 낸 사람들은 솜씨가 쑥쑥 늘고 장사도 잘되는데, 생계 욕심이 앞서는 사람은 잘 안된다"고 했다. 조씨는 "젊은 주부들이 '아이들 학원 데리고 다닌다'는 핑계로 무료하게 어울려 다니는 게 안타깝다"며 "엄마 뒷바라지가 꼭 필요한 시기 말고는 자기 취미를 계발해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 취미를 노후 수입으로 연결 시킨 조원희씨가 10일 의정 부 장암동의 화원에서 막내 딸 박슬기씨와 함께 소품 분 재를 가꾸고 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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