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8일 목요일

좋은 직장 그만둔 40대 셋에게 살 만하냐고 물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50&articleid=2010070715022264624&newssetid=1270

▲ 출근길 사당역 아침 전철역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 정진선

1년 전부터 멀쩡한 직장을 스스로 그만뒀다는 지인들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들 모두 대박을 노려 창업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 중에 기댈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모아둔 개인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지만, 명예퇴직을 걱정할 40대 나이에 그들은 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었을까? 혹시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만나보았다.

이 간 큰 사람들은 한 차례 사업 경력을 빼고 20년간 전자 관련 회사에 근무하다가 고소득 연봉을 받던 대기업을 퇴직한 윤성호(가명, 43세 남성)씨, 박사학위 취득 후 15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유수의 사회과학연구소를 퇴직한 김수진(가명, 47세 여성)씨, 대학졸업 후 16년간 편집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안정적인 잡지사를 퇴직한 이수경(가명, 40세 여성)씨다.

"처음으로 평일 낮에 따사로운 햇빛 받으며 걸어봅니다"

지난 1년 동안 놀랍도록 활기차면서도 편안한 인상으로 변한 윤성호씨를 만났다. 솔직히 예전 그의 표정의 반을 차지했던 짜증은 온데간데 없어져 적잖이 놀랐다. 그가 20여 년 간의 직장 생활 중 힘들 때는, 근무시간 중에 집중해서 열심히 일하고 '칼' 퇴근해서 개인 시간을 충분히 갖길 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설렁설렁 일하면서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입사 초기에는 이런 비효율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회사생활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차차 그도 모나지 않게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회사 에서 시키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고 본인 방식으로 일하기가 어려운 분위기도 싫었다고 했다. 그는 업무 효율이나 일의 즐거움과는 상관없이 이전 사람들이 혹은 윗사람들이 해오는 대로 그대로 일하기만 바란다고 느꼈다. 평소 생각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그였기에 이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결정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20년 동안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하루 종일 앉아서 정해진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지겨웠어요. 회사 밖에서 개인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처음으로 평일 낮에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길을 걸었을 때의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늦잠도 자고 술도 실컷 먹고 여행도 가고 낮에 영화도 보고 정말 신나게 보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마음공부도 하고 자원봉사도 해보고, 개인상담, 집단 상담, 명상, 비폭력대화 등의 심리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동안 맺혀있는 줄도 몰랐던 사건들과 감정들을 남들에게 털어놓고 엉엉 울어도 봤어요. 참가자들끼리 서로 위로, 지지, 따뜻한 조언도 나누면서 안정감도 느끼고 행복했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취미로 기타 연주를 즐겼는데, 퇴직 후에 시간이 많으니 연습할 시간도 많아졌고 연주 실력도 순식간에 늘었다고 기뻐하고 있다. 또 시민단체 봉사를 통해 똑똑하고 넉넉한 분들을 알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거든요." 그는 환한 표정으로 연신 행복하다고 말했다.

개인 생활과 회사 수입을 맞바꾸다

개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 두다니, 무모하고 엉뚱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면서 경제 활동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여 물었더니, 프리랜서 번역일을 하면서 기본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 다니던 때보다 수입이 1/4로 줄었다고 한다. 그전처럼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해서 불편할 때도 있고, 아내한테 괜히 미안해 질 때도 있다. 모임에 갔을 때 기분 좋게 한턱내는 일이 없어지고, 부모님 용돈 못 드리는 점도 마음에 걸리는 불편이 있지만, 기본 소비도 1/4로 줄여버리니 별로 불편한 점 없이 산다고 했다.

노후에 대해 물었더니,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노후에 버는 돈이 더 적어지면 그때에는 더 적게 소비하면 된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가 소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 원래부터 소비 욕구가 적은 사람인지 물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단지 소비에 대한 욕구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살고 싶은 욕구가 더 큰 것뿐이에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자유롭고도 싶고 그러면서 돈도 벌고 싶고…. 저야말로 완전히 욕심꾸러기이죠. 하하하."

"회사에 매이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서 비로소, 막연히 개인 시간을 갖고 싶었다는 소망에서 더욱 발전하여, 나라는 사람이 중요시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하는 그를 보니, 그동안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욕구를 발산하지 못했던 이 사람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뷰를 하는 내내, 그전과는 다른 여유와 당당함을 그에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 '행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한 사람에게 돌아온 당연한 결과물일 것이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는 그의 용기가 부럽고 그가 앞으로 계속 창조해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해진다.

"소비는 선택적으로 하고 욕망은 관리하면 됩니다"

주위에서 악바리이자 성실의 화신으로 여겨지던 김수진씨가 국내 유수의 연구소를 그만두고 나온 이유는 몸이 쉬고 싶고 자기 전공인 사람과 사회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다. 그녀는 사회과학 관련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딴 후에 15년간 민간연구소와 국책연구소를 다녔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연구가 전공이지만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하고 너무 많은 보고서를 쓰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였다.

그로인한 보고서의 질적인 저하에 대해서도 스스로 불만이 생겼고, 성과만을 중시하는 시스템에 심신이 지쳤다. 연구소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니던 연구소를 '보고서 공장'이라고까지 불렀다.

직장을 그만 두고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인터뷰 초기의 경직된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은 놀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 이제라도 잘 노는 법을 배우고 싶단다. 또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늘 결과에 집착하였는데, 집중적인 마음공부를 통해 이런 성격도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배운 지식을 연구나 강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대중과 나눌 수 있는 길은 없나 찾아볼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나 살고 싶은 삶의 형태를 아직 모르겠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많은 방황을 해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추측해 보지만 단 한번 뿐인 인생, 즐겁게 살기 위해서 '뒤늦은 방황'은 필수라고 믿고 있다.

퇴직 후에 실제 생활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제일 좋은 것은 병원을 꾸준하게 다닐 수 있는 거죠. 제가 만성질환이 있었는데 바빠서 치료를 받다 말다 해서 자꾸 재발하였는데 꼬박꼬박 치료를 받아 한결 건강해졌어요. 몸이 편하니 마음도 편하고요. 여유롭게 자신과 주변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고 읽고 싶었던 책을 맘껏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병원을 꾸준히 다니게 되어서인지 정말 그녀의 혈색이 예전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아들에 대한 경제적 책임은 그만

역시 김수진씨도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여 물었다. 그녀는 혼자 먹고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대학생 아들이 걸린다고 한다. 대학 3학년생인 아들의 등록금은 올해까지는 저축액으로 해결되겠지만, 4학년부터는 휴학을 해서 벌든지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학창시절에 어렵게 공부한 경험이 있고, 오히려 그 덕택에 자립심이나 책임감 등이 키워졌다고 생각하므로, 아들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이 안된다면서 이미 결정을 했다고 한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에 대한 경제적 책임은 그만하렵니다."

'소비는 선택적으로 하고 욕망은 관리한다'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읽은 그녀는 그 말 그대로 살고 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 왔는데 사는 지역이 변하니 소비도 변했다. 특히 산자락에 살다보니 주변에 마트나 상점이 없어 소비 충동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웃들의 소비 수준도 높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지 못한다.

"예전에는 탈출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는지 여행에 대한 욕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녀를 만나면서 그녀의 확 달라진 혈색만으로도 일단 그녀가 직장을 그만 둔 것에 대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박사까지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했다.

한편, 누군가 청춘시기에 방황을 충분히 했다면 40대 후반에 와서는 방황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0대, 20대에 충분히 방황을 해 본 40대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철역 거울에 퇴근하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이혜경씨는 대학 졸업 당시 유행하던 트렌디 드라마 영향인지 전문직 여성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사회에서 꼭 필요한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이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다.

회사 생활 초창기에는 본인 능력 이상의 업무를 해야 할 때 힘들었다. 하지만 노력하고 도전하여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 속에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상사와의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무조건적인 복종을 바라고 비용을 반으로 줄이라는 등의 말도 되지 않는 요구에 황당했다.

"아무튼 전 예스맨이 될 수 없었어요. 절대 복종이라는 면에서 회사가 군대 같다고 생각하지만 군대에서 같은 내무반 사병끼리도 경쟁하나요?"

상사는 그녀보다 나이가 일곱살이 많아 '야', '너'라고 반말을 했고, 그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조심스럽게 호칭이 듣기 불편하다고 건의했다가 눈총을 받으며 몇 달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가 학교나 친목 모임 등 다른 곳에서 만난 연장자가 반말하는 것이 특별히 거슬렸던 적은 없었다.

"왜 유독 회사상사에게 반말 듣는 것이 싫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할 것 같아요."

회사 안에서 정치적인 활동, 소위 라인에 줄을 서지 않았다. 회사사람들과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었지만 상대 라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간질, 모함 등이 판치는 걸 보고 마음을 주지 않았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야근이었다. 잡지사다 보니 마감에 일이 몰려 한 달에 보름은 밤 12시까지 일했다. 그녀는 긴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나갔다.

"몸이 너무 힘들죠. 전철역 거울에 퇴근하는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너무 피폐해 보여서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몸이 아파도,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오로지 야근을 해야 했다. 죽을 것 같아 스스로 뛰쳐나왔다. 이제 살 것 같으냐고 묻자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혜경씨는 현재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수입이 적지만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측면에서 괜찮다고 본다. 본인이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서만 지내다 보니까 그로 인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컸다. 가게 갈 시간도 없어 인터넷으로 옷, 화장품, 필요도 없는 잡다한 물건들을 사들였다.

"왜, 지름신이 내렸다고 하잖아요. 정신없이 사들이면 헛헛한 마음이 일시적이었지만 달래졌죠. 지금은 벌이가 줄다보니 예전처럼 쇼핑을 할 수도 없지만, 공허함이 줄어들면서 이것저것 많이 사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아요, 꼭 필요한 것만 사요."

아직은 엄마 집에 얹혀 사니까 경제적 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또 주변 맞벌이하는 친구들도 내 집 마련하느라 빚이 억 단위가 넘어서 풍족히 쓰고 살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버린 과거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본인이 선택한 삶인데도 문득문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든다고 한다. 혼자만 도태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다. 마음 한구석에 답답함도 있다.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아 버렸다는 것을 알아버렸죠."

그런 자신에 마음이 편치 않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자신이 화났는지 불안한지 괴로운지도 못 느끼고 살았는데 이제는 감정 혹은 진실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고민거리에 대해 묻자, 일에 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할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우선순위를 매길지 알아보고 있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뿌연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녀와 만나면서 그녀가 직장을 다녔을 때 상당히 망가졌고 결국은 그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탈출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녀가 다시 '마감 노동자'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산산이 부서졌던 몸과 마음이 아직은 수습되지 못했기에 아르바이트와 독서 정도 이외에 특별한 활동은 없었다. 그녀가 힘을 얻기 위해 무언가 적극적인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면서 필자 또한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삶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터뷰를 마치며

필자는 회사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규모의 직장만을 다녔다. 급여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다니고 싶었음에도 회사가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업종을 바꿔가며 여러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덕택으로 일도 감당 못할 만큼 많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가 사장에게 눈치를 주는 위치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내심 월급을 많이 주는 큰 회사나 그렇지 않더라도 아주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는 했다.

하지만 한때나마 동경했던 직장을 다닌 위 세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세상엔 공짜가 없음을 다시금 느꼈다. 그 훌륭한 직장엔 엄청난 대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밀려들어오는 일에 눌려 여유를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찾는 방법으로 회사에 머무르기보다는 스스로 나오는 길을 선택했다.

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들은 회사를 제 발로 나오고 나서 아직까지는 후회 없이 잘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 사람 모두 가명을 써주길 원했다. 주목받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씩은 회사를 때려치우는 상상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잘 나가던 회사에 선뜻 스스로 사직서를 내기가 쉽지 않은 일임에, 이들의 행동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이들이 무조건 회사 다니는 사람보다 당당하거나 용기있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회사를 나왔다고 무모하고 철없는 사람들로 여겨져서도 안 될 것이다.

이들은 단지 또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고, 충분히 존중받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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